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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에 아무리 집중해도 오빠는 보이던데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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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25·스릭슨)의 캐디는 18일(한국시간)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인근 코 올리나 골프장에서 벌어진 롯데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초록색 조끼를 입었다. LPGA 투어는 랭킹 1위 선수의 캐디에게만 초록색 캐디빕을 입힌다. 지난주 스테이시 루이스(28·미국)를 밀어내고 여왕 자리에 오른 박인비를 만났다.

-세계 1위가 된 후 처음 경기한 기분이 어떤가.
“내가 지난해 청야니처럼 독보적인 1위였다면 1위라는 기분이 들겠지만 지금은 4위까지 차이가 미세해서 매주 1위가 바뀔 수 있다. 아직은 내가 완전한 1위라고 생각하지 않고, 부담을 가지고 싶지도 않다.”

-청야니는 ‘(박)인비에겐 4m 이내에서는 무조건 OK 줘도 될 정도로 퍼트가 좋다’고 했다. 오늘은 짧은 것도 많이 놓쳤다.
“오늘 짧은 퍼트를 많이 놓치고 3퍼트도 2개 했다. 나를 따라다닌 엄마가 그걸 보고 너무 힘들어하시더라. 하와이 그린은 나에게 잘 안 맞는 것 같다. 스피드가 느리면서 결을 많이 타는데 이 그린에서 난 잘 쳐본 적이 없다. 하와이는 기후가 오키나와랑 비슷하니까 미야자토가 이 그린에서 잘 친다.”

-미야자토보다 퍼트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렇지 않다. 미야자토가 나랑 칠 때 유달리 퍼트를 잘한다. 그린에 따라 다르고 결론적으로 퍼트 실력은 비슷하다.”

-퍼트를 잘한 벤 크렌쇼는 홀(컵) 흙 냄새까지 맡으면서 일체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 기분이 드나.
“그런 건 없는데 가끔 10m가 넘는 거리에서도 라인이 딱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땐 들어가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런 걸 일체감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난 거리감과 그린 읽는 능력이 다른 선수에 비해 좋은 것 같다. 또 생각을 적게 하고 느낌을 믿는다. 만약 내가 왼쪽으로 홀(컵) 2개를 봤는데 어드레스 후 왼쪽 한 컵인 것 같으면 그냥 느낌을 믿고 한 컵 보고 친다. 대부분 맞다. 캐디 얘기보다 내 생각을 더 믿는다. 그린 경사는 앞뒤로 두 번만 본다. 사방에서 다 보는 선수도 있는데 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두 번이면 족하다.”

-퍼트의 절반은 집중력이라고 했다.
“그렇다. 잡생각이 있으면 퍼트가 잘 될 수 없다. 코스에서 딱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머리를 비우고 경기하려고 한다.”

-느린 템포에 코킹도 하지 않는 적은 백스윙, 임팩트 때 공을 보지 않는 스윙이 특이하다.
“몸이 유연한 편이 아니다. 코킹을 하지 않는 것도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손목이 잘 안 꺾여서다. 내 스윙이 모범은 아니고 나는 LPGA에서 베스트 볼 스트라이커는 아니다. 스테이시 루이스, 최나연, 청야니의 스윙이 좋다. 거리와 일관성에서 그들이 낫다. 다른 선수들이 내 퍼트를 보고 부러워하는데 난 스윙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했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하다.”

-탄도가 낮아 그린이 딱딱한 나비스코에서 힘들 것 같다고 유소연 선수에게 얘기하고 나서 우승했다.
“대회 직전 어깨 턴이 덜 돼서 훅이 났다. 대회 때는 그걸 고쳤다.”

-스윙할 때 이것만은 꼭 지키자고 생각하는 것이 있나.
“매주 바뀐다. 이번 주는 어깨와 팔이 일체감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다.”

-박인비 프로의 느린 스윙 템포가 아마추어들에게 도움이 될까.
“느리게 스윙하라고 하면 다운스윙에서 속도를 죽이는데 그게 아니다. 템포가 느리더라도 때릴 때는 제대로 쳐야 한다. 느린 템포로 스윙하면서 임팩트 백(impact bag·스윙 연습도구)을 때리는 연습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지난해 중반 이후 최고다. 10연속 톱 10에 들기도 했고 잘 치면 65, 못 치면 70타인 것 같다.
“샷은 아주 잘될 때도 있고. 삐거덕거릴 때도 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다 생각하고 마음을 비운다.”

-슬럼프 때는 어땠나.
“2008년 US 여자오픈 우승을 하고 난 이후 슬럼프였다.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가면 공이 어디로 갈지 몰라 눈앞이 캄캄했다. 그만두고 싶었다. 오빠(약혼자)가 ‘투어 프로를 하다가 그만두고 다른 일들을 해보니 골프 치는 게 가장 좋다’고 조언해줘 계속할 수 있었다.”

약혼자 남기협(32)씨는 KPGA 프로다. 2008년 KPGA 선수권에서 8위에 올랐다 은퇴했다. 박인비의 아버지 박건규(52)씨에 따르면 남씨는 320야드를 때리기도 한 장타자였는데 쇼트게임이 약했다. 짧은 퍼트에 부담을 많이 가졌던 선수였다. 남씨는 박인비의 퍼트 실력은 뛰어난 정렬에서 나온다고 분석한다.

-약혼자는 언제 만났나.
“고등학교 때 로스앤젤레스의 골프 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났다. 나는 거기서 살고 있었고 오빠는 전지훈련 왔다.”

-처음부터 잘해줬나.
“사람이 좋다. 모든 사람에게 잘해주더라. 그래도 나에게 조금 더 잘해주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사귀었나.
“2006년 2부 투어 뛸 때부터 사귀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둘 다 투어에서 뛰니까 1년에 세 번 정도밖에 볼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사귄 건 2007년 경주에서 열린 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다. 오빠에게 캐디를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당시 오빠가 바쁜데도 선뜻 해주더라. 그때가 결정적 계기였던 것 같다.”

-오빠가 가방을 메니까 성적이 잘 나오던가.
“그렇지 않다. 40등 정도 했다. 당시 바람이 엄청 불었고 경기 마지막 라운드가 취소돼 아주 복잡했는데 오빠가 있어서 위로가 되더라.”

-샷도 고쳐줬다고 들었다.
“오빠가 릴리스를 하는 방법을 완전히 바꿔줬다. 2011년 말부터 중점적으로 고쳐줬다. 나는 임팩트 때 손목이 미리 릴리스되는 스타일이었다. 오빠는 그 문제점을 알아냈다. 클럽을 완전히 끌고 내려온 다음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릴리스를 만들어줬다.”

-오빠가 몇 년간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말을 하지 않다가 2011년에야 알려줬단 말인가.
“고등학교 졸업 후 5~6년 동안 가지고 있었던 플레이 스타일이었고 당시 다른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었고 해서 오빠도 섣불리 얘기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 3년간 보다가 얘기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거의 오버파를 치지 않는 완벽한 경기를 하고 있다. 좀 더 일찍 릴리스 문제를 고쳐줬다면 더 빨리 1위가 됐을 것 같다.
“그래서 오빠한데 미리 좀 얘기하지 그랬느냐고 몇 번 얘기했다.”

-경기 중 오빠가 보이나.
“아무리 경기에 집중해도 오빠는 보인다. 오빠는 경기 중 얘기는 안 하고 잘할 때 박수만 쳐준다. 매번 보는 것이지만 그때마다 기분이 좋다.”

-결혼은.
“내년 겨울에 할 것 같다. 부모님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할 것 같다.”

-나이 차이가 일곱 살인데 친구들이 오빠 나이가 많다고 하지 않던가.
“친구들은 다 오빠 편이다. 다 오빠가 아깝다고 하더라.”

-나비스코 챔피언십 호수에서 담아온 물은 아버지에게 뿌려 드렸나.
“하와이에서 가족이 만나 호텔 수영장으로 갔다. 거기서 부모님에게 뿌려 드리고 함께 손을 잡고 수영장에 점프했다. 내년에는 가족과 함께 나비스코 챔피언십 호수에 뛰어들 거다.”

호놀룰루=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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