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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마케팅 필요 없는 ‘예술품’…에르메스(2)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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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56년 「라이프」誌의 표지는 임신한 모나코의 왕비 그레이스 켈리였다. 표지에서 정작 시선을 끈 것은 그레이스 왕비가 아니라 그녀가 임신한 것을 숨기기 위해 배를 가린 빨간색의 악어 가죽 백이었다. 이 백이 바로 에르메스(Hermes)의 대표적인 제품이라 일컬어지는 켈리(Kelly)백. 쁘띠 삭 오뜨라는 원래의 이름 대신 켈리라는 애칭을 갖게 된 연유는 이렇다.

국내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에르메스의 백들은 그 제조 과정을 살펴보면 ‘제품’이 아닌 ‘작품’이라 불리는 이유를 가늠할 수 있다. 에르메스는 가죽 공급업자가 가장 먼저 들러 제품을 고르게 하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에르메스가 상위 10% 가량을 선택한 후에야 타 브랜드로 선택권이 넘어간다. 에르메스의 구매 가격이 가장 높고, 현금으로 즉시 결제가 이루어지는 것이 큰 이유다. 소 가죽으로 백을 만들 경우 백 한 개에 소 한 마리가, 악어 가죽으로 백을 만들면 두 마리가 소비된다.

제품을 만드는 장인이 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가죽 장인이 되려면 3년간의 ‘에르메스 가죽장인 학교’를 졸업해야 하고 그 후 2년에 걸친 수련 기간을 갖는다. 이 수련 기간 동안에 제작되는 가방은 상품화되지 못한다. 장인들의 법정 주간근로시간은 33시간으로, 한 명의 장인이 18시간의 제작 시간이 소요되는 켈리 백을 일주일에 두 개도 채 만들지 못하는 셈이다.

제작 과정은 완전 수공으로 이루어진다. 커팅된 가죽 재료가 담긴 트레이(tray)가 각각 장인의 작업 데스크로 배달되면 한 사람의 장인이 백을 완성한다. 따라서 각 제품에는 데스크의 번호와 제작된 해가 찍히고, 수 년 혹은 수십 년 후에 고객이 수선이나 부분 교환을 원하면 그 가방이 제작된 데스크 번호로 배달되어 수리된다.

에르메스 백의 또 다른 특징은 한 번 선보인 제품은 절대 단종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매년 2월과 7월에 열리는 포디움(podium; 전 세계 에르메스 스태프가 모인 자리에서 신상품이 소개되고 바잉이 이루어지는 내부 행사)에서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새로운 소재·색상 그리고 디자인의 백들이 선보인다는 점에서도 ‘전통을 바탕으로 하되 새로운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에르메스의 기업 이념을 엿볼 수 있다.

종종 에르메스의 가방 중 일부가 공급이 딸리는 이유를 에르메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웨이팅 리스트에 맞추어 인기 품목만을 생산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 다양화에 힘을 쏟기 때문’이라고. ‘장인들에게 특정 아이템의 제작만을 요구한다면 장인들의 손끝이 무디어지고 말 것입니다’라고 아뜰리에 담당자도 거든다.

지난해 국내에서는 아젠다의 인기가 높았다. 외부와 내부 컬러가 다른 양면 컬러(bicolor), 그리고 악어·타조·송아지·양 등 많은 가죽을 사용, 다양화를 추구한 것이 인기의 비결로 꼽힌다. 스테디셀러는 H가 들어 있는 제품군으로 H 버클의 아이들 신발·로퍼·벨트·콘스탄스 가방 등이 꾸준히 팔리고 있다.

이들은 국내뿐 아니라 유럽과 외국에서도 역시 지속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올해 에르메스는 다양한 안장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먼저 승마 바지가 아시아용으로 소개되는데, 기존의 기장이 너무 길다든지 밑 길이가 적당하지 않다든지 하는 체형적인 단점을 보완하여 출시될 예정이며, 캔버스 소재의 에르 백 역시 더욱 다양한 모습이 기대된다. 레몬 그라스 컬러가 특징적인 여성복과 아쿠아디엄 블루와 라임 그린 컬러가 독특한 남성복도 주목할 만한 품목이다.

출처: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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