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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기구」는 떴지만…|이 의장 수습안과 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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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효상 국회의장은 26일 6·8총선 파동으로 빚어진 정국수습을 위해 그의 사견과 그동안 여·야의 중진급 인사들과 접촉한 결과를 종합, 7개 항목으로 된 시국수습방안을 제시했다. 6·8가 일부지역에서의 「부정」으로 흐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전면부정」은 아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이 의장의 수습방안은 선거부정을 캐내기 위한 여·야 동 수의 특조위구성과 의장공관에서의 여·야 중진회담을 제의하고 이밖에 (1)사과문제 (2)인책문제 (3)부정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장 (4)부정·부패의 일소 (5)국회의 정상화 등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 이 의장이 이 제의에서 『여당이 대통령의 3선을 위한 개헌을 추진하려 하지 않겠느냐는 일반국민의 불안감을 없애주었으면 한다』고 말한 것은 개헌선 파기를 종용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국무위원 이상의 자」의 인책을 비친 것은 특히 주목을 끌었다. 이와 같은 이 의장의 시국수습안은 선거를 치른지 근 50일이 되도록 여·야간 대화의 길을 잃은 채 공전만을 거듭해온 정국에 어떤 전환을 가져다줄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공화당이 조심스런 기대를 걸고 있는 반면 신민당은 즉각적으로 『이는 부정선거에 대한 그릇된 변호와 알맹이 없는 의제의 나열에서 시종한 것으로 심히 빗나간 제안』이라고 극히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와는 별도로 같은 날 서민호 대중당수가 제시한 4개항의 시국수습안은 윤곽은 이 의장안과 비슷하면서도 박 대통령의 사과·선거내각의 총사퇴 등 훨씬 강경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어 이대로 라면 신민당의 양해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의장의 이번 제의가 「사안」임을 명백히 하고 있으나 이것이 마련되기까지 정부와 여당의 수뇌급 인사들의 의견이 많이 참작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들과의 산발저인 접촉결과를 집약한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풀이되고 있다. 따라서 야당을 하루속히 국회에 끌어들임으로써 국회의 정상화를 시급한 과제로 삼고 있는 정부·여당으로서 이 의장의 「사안」을 통한 이번 제의는 「제2차 수습안」을 전제로한 탐색적인 「애드벌룬」으로 해석하는 측도 있다.
이 의장의 이번 제의에서 각료급 이상의 인책을 비친 것이라든지 개헌선 파기를 종용, 부정구의 확대를 포함시킨 것 등은 정부·여당의 의도를 전폭적으로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제까지 산발적으로 기도되어온 여·야 접촉 「루트」를 통일시키고 앞으로 「불가피」하게 전개될 여·야 협상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제의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공화당의 이 의장의 제의에 대해 일단 「호의적」이면서도 착잡한 반응을 보였다. 『여·야 중진회담 개최에 대해서는 찬성이지만 나머지 부분에는 찬성 못할 점이 있어 당내의견을 조정해야겠다』는 것이 김진만 원내총무의 말이었다.
이 의장이 6·3사태때 발휘한 「협상의 명수」로서의 솜씨가 다시금 「시험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는 이번 이 의장의 일련의 움직임은 비록 여·야를 초월한 초당적인 국회의장 자격으로 행해진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가 공화당 소속 국회의원이라는데 어쩔 수 없는 제약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공화당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의장의 수습 안은 우선 시국수습을 위해 공화당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느냐 하는 점을 국민에게 「피아르」하는 좋은 기회였다. 공화당의 협상노력의 목표를 오는 9월 정기국회까지 야당의원의 원내복귀를 실현시키는 일-. 그런데 만약 야당의원이 그때까지도 국회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모든 국정마비의 책임이 야당에로 몰아가며 따라서 공화당으로 단독개원을 할 사태에 대한 명분을 거기서 찾을 수도 있다는 속셈을 갖고 있다고 일부에서는 보고 있다.
이들은 이 의장의 「국회의 정상화」를 특히 강조하고 『주권자의 수임자인 국회의원이 여러 문제를 국회에서 해결하지 않으려 한다면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지적한 것을 이와 같은 공화당의 장기적 원내전략과 연관시켜 생각하고 있다.
한편 이 의장의 수습 안에 대해 신민당은 『일부 부정은 있었지만 전면부정은 아니었다』고 한 그 출발점부터 말도 안 된다고 외면해버렸다. 「전면부정 시인」과 「전면재선거 실시」 주장에서 일보도 후퇴하지 않고 있는 신민당의 기본태도에서 본다면 이 의장의 제의는 전제에서부터 검토의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신민당은 이 의장의 제의가 나오기 이틀전인 24일의 투위에서 이미 제안의 내용을 예견하고 「검토」를 위한 회의도 열지 않기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이효상씨가 국회의장이라고는 하지만 집권당내의 한사람에 불과하며 집권당 내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기 때문에 「시국수습문제」를 놓고 그를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신민당의 계산이다.
신민당은 「6·8총선 무효화투쟁」을 「투쟁을 위한 투쟁」이 아닌 「71년의 집권을 목표로한 슬기로운 투쟁」으로 이끌기로 방향정립을 하고 있다.
한·일 비준파동 당시와 같은 투쟁을 위한 투쟁을 주장하는 초당경파는 극소수이며 대부분의 당원의 의견은 이번 투쟁을 『공화당이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를 하려는 정당이 아니다』라는 점을 국민 앞에 똑똑히 인식시켜줄 때까지 『영리하고 슬기로운 투쟁을 해야한다』는 데 모아지고 있다.
공화당에서는 전당대회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의원이 한달만에 국회에 복귀했던 한·일 비준파동 때처럼 늦어도 10월까지는 야당의원의 등원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6·8총 선에서 군소 정당의 몰락으로 어떤 의미에서 유일한 야당이 된 신민당의 투쟁은 그때의 전열이나 분위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의 공산이 어느 때보다도 커진 마당에 이 의장이 제시한 『몇몇 개의 미끼에 말려 들어갈 이유는 없다』고 그들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 자신도 6·8선거로 인한 정국경색이 언제쯤 해결될 것이냐 하는 것은 스스로도 알지 못하고 있다.
낙선자들의 등원을 막는 강열한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지만 당선자 가운데서도 당론을 이끌만한 3선 이상의 관록을 지닌 의원들에게 원내활동이란 초선의원처럼 조급한 일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신민당이 국회등원의 시기를 『공화당이 본질적으로 어떤 정당이란 걸 똑똑히 국민 앞에 보여준 다음』이라고 보고 있는 것은 야당의원이 9월 예산국회 때까지 등원 않을 경우 공화당 의원만으로 단독개원을 강행할 사태가 생길 때 『이것이야말로 단독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공화당의 비 민주주의적 본질을 드러낸 것』이라고 공격할 속셈인 것 같다.
이 의장의 제안을 외면한 신민당은 『6·8 부정선거에 대한 전 책임과 해결의 의무 및 권한은 박 대통령이 사태수습을 위한 과감한 단안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정상화를 위한 신민당의 능동적인 행동을 취해주는 선행조건은 대통령만이 취해줄 수 있다는 것.
그들은 6·8선거에 있어 여당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박 대통령 자신의 입으로 밝히고 국민이 납득할만한 조처를 취한다는 것이 여·야 대화의 절대 선행조건이며 그다음 신민당 스스로가 정국수습을 위한 능동적 자세를 취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박 대통령 외의 어느 누구의 수습안에 대해서도 상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확고히 하고 있다.
신민당이 이와 같은 강경 태도를 「능동적으로」 누그러뜨리지 않는 한 이의장의 26일자 제안만으로 국회정상화의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하기는 지나친 기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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