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시민을 불편하게 하는 시위는 잘못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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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소현
사회부문 기자

17일 덕수궁 앞. 원래 넓었던 인도는 사람이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혼잡했다. 돌담 앞 펜스를 철거하는 문화재청 직원 30여 명과 이 자리에 대형 화분과 화단을 설치하는 중구청 직원 30여 명이 섞여 작업을 했다. 이들과 쌍용차 해고 노동자 시위대 간의 충돌에 대비하는 경찰 병력 수십여 명이 한데 엉켰다. 시민들은 사람들을 헤치며 어렵게 지나가야 했다. 일부 시민은 “시위대가 안쓰럽다가도 일단 내가 불편하니 이해가 안 된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펜스를 철거한 뒤 대한문 앞 인도는 더 기이해졌다. 돌담 앞으로 사람 한 명 정도 지나다닐 수 있게 1m 남짓의 공간을 두고 가로 20m, 세로 5m의 대형 화단이 설치됐다. 그 앞에 시위대가 자리를 잡고 있다. 경찰은 18일에도 시위대가 화단에 들어가거나, 돌담과 화단 사이 공간을 점거할 때마다 확성기로 경고한 뒤 병력으로 에워싸기를 반복했다. 시내 한복판에서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시위대는 “1년을 지켜온 자리”라며 덕수궁 앞이 갖는 상징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덕수궁은 시위하는 곳이기 전에 주요 문화재다. 지난달 불법 설치물인 농성장 천막에 화재가 나며 덕수궁 돌담과 서까래가 그을렸다. 이를 수리하는 데 국민 세금 7000만원이 들었다. 19년째 덕수궁 돌담길을 지키고 있는 조각가 조규현씨는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었다”며 걱정했다. 관광 가이드들도 덕수궁 앞에 관광객을 데려오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현장에는 중구청 공무원 20여 명과 경찰 병력 200여 명이 상주하고 경찰버스 등 차량 10대가 상시 대기 중이다. 모두 민생 현장을 챙겨야 할 인력이다. 이들이 받는 월급만큼 세금도 줄줄 새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도로 한 개 차로도 상시 주차된 경찰버스로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시위대는 “누가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는지 모르겠다”며 화단 설치를 비난한다. 지난 4일 구청은 천막을 철거한 자리에 화단을 만들었지만, 시위대가 화단 앞에 자리 잡으면서 인도는 더 좁아졌다. 화단은 지난달 방화가 일어난 뒤 문화재청에서 설치를 요청한 것이다. 이를 두고 시위대를 옹호하는 일각에서는 ‘낭비행정’ ‘탁상행정’이라고 구청을 비난한다.

 집회 신고를 한 이상 시위는 합법이다. 하지만 남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시위대의 주장이 정당하더라도 공공의 공간을 무단으로 점유할 권리는 없다. 피켓시위 등 선진적 시위로 대체한다면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상황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시위대는 “절박하기 때문에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시위 현장을 지켜보던 한 중년 여성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정당한 시위라도 남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잘못이죠.”

김소현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