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 주식담보 대출 4100억원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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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트리온이 회사 주식을 담보로 금융회사들로부터 4100억원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신약을 아직 팔지 못해 회사 내 현금이 부족한 점을 노리고 공매도 세력이 이들 대출의 만기에 맞춰 공매도를 집중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dart.fss.or.kr)에 따르면 셀트리온은 지난 9일 ‘주식 등의 대량 보유 상황보고서’를 통해 주식담보대출 규모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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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서에 따르면 서정진(56) 셀트리온 회장이 지분 97.3%를 가진 지주회사 셀트리온홀딩스는 2006년 6월부터 지난달 29일까지 모두 19차례에 걸쳐 셀트리온 주식 1003만 주(전체 발행 주식의 10%)를 담보로 우리은행·대우증권·농협중앙회 등으로부터 2370억원을 대출받았다. 공시된 대출 목적은 대부분 ‘운영 자금’이었다. 셀트리온의 물류를 맡는 셀트리온GSC(서 회장 지분 68.42%)도 셀트리온 주식 694만 주(발행 주식의 6.9%)를 담보로 금융회사들로부터 1747억원가량을 빌렸다. 이들 대출 중 1817억원은 올 2분기에 갚아야 한다. 셀트리온은 이 중 지난 2일 만기가 돌아온 150억원을 갚았다고 보고서에서 밝혔다. 이에 대해 셀트리온 김형기 수석부사장은 “대부분 주가 방어를 위해 (대출이)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최근 셀트리온에 공매도가 집중된 것이 주식담보대출 만기 도래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게 증권업계의 분석이다. 셀트리온이 대출을 연장하지 않으면 자금을 마련해 갚아야 한다. 지난해 1970억원의 순이익을 낸 셀트리온과는 달리 지주회사인 셀트리온홀딩스는 지난해 순이익이 135억원, 물류회사 셀트리온GSC는 16억원에 불과하다. 현실적으로 빚을 해결하려면 셀트리온 주식을 처분해 대출을 갚거나 추가 지분을 담보로 내놓아야 한다. 이 중 주식 처분을 통한 대출 상환을 선택한다면 셀트리온 매물이 쏟아져 주가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결국 공매도 세력이 이익을 본다. 익명을 원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 전체 거래의 20%를 넘을 만큼 공매도가 급증한 것은 주식담보대출 만기를 겨냥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셀트리온이 적극적으로 주가를 방어하려 한 것도 주식담보대출과 무관하지 않다고 증권업계에선 본다. 셀트리온 계열사에 550억원가량을 빌려준 대우증권 관계자는 “통상 대출 금액과 비교해 주가가 140% 밑으로 떨어질 경우 추가 담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강제 상환한다”며 “셀트리온은 그 정도에 이르지 않았지만 만기 연장 시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실 공매도가 유독 셀트리온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다. 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셀트리온 전체 거래 대비 공매도 비중은 5.1%다. 현대산업개발(15.3%)이나 아모레퍼시픽(12.4%)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럼에도 현대산업개발이나 아모레퍼시픽은 공매도에 대응해 자사주 매입 같은 주가 방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매도로 주가가 단기에 출렁일 순 있지만 회사의 본질적인 가치엔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매도 제도에 대한 논란은 확산되고 있다. 서 회장은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2년간 노력했지만 악성 루머를 악용한 공매도 세력을 버텨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셀트리온 소액주주동호회 이재철 회장은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금융당국이 셀트리온에 대해 공매도 제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 회장은 “규정상 공매도 비중이 전체 거래의 3%를 넘으면 공매도 금지 종목으로 지정할 수 있다”며 “셀트리온은 여기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거래소 진수형 경영지원본부장은 “공매도 금지 종목으로 지정하려면 주가가 시장 평균보다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며 “셀트리온은 이것이 쉽지 않아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셀트리온이 주가 방어를 하는 것보다 실적을 개선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셀트리온은 약품을 일단 ‘셀트리온헬스케어’란 계열사에 판매해 국내외 유통과 판매를 맡긴다. 그러나 셀트리온이 개발한 주력 약품 램시마는 아직 해외 판매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셀트리온에서 산 약을 재고로 쌓아두고 있는 이유다. 이 금액은 지난해 말 기준 6778억원에 달한다. 이런 문제가 해소되면 주가가 오를 것이어서 공매도 세력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진다.

 전날 기자회견 후 5% 넘게 올랐던 셀트리온 주가는 17일에는 13.35% 떨어진 4만3150원에 마감됐다. 셀트리온은 이날 서 회장의 지분을 매각할 주간사로 JP모건을 선정했다. 회사 측은 “5~6월께 유럽의약품청으로부터 램시마 승인이 나면 재고에 대한 우려는 해소될 것”이라며 “예정대로 매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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