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스 내리 4승 우승 … 그 뒤엔 마당발 양동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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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모비스 선수들이 유재학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유 감독은 “문경은 감독도 잘했다”며 제자이기도 한 패장을 위로했다. [울산=뉴시스]

울산 모비스의 가드 양동근(32·1m81㎝)은 지난해 챔프 안양 KGC인삼공사의 가드 김태술만큼 창의적이지는 않다. 올해 챔프전에서 만난 서울 SK의 가드 김선형만큼 화려하지도 않다. 그러나 2013 프로농구 챔피언에 등극한 모비스의 리더는 바로 양동근이다. 그는 성실, 겸손, 희생이라는 수수한 미덕들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보여줬다.

 모비스는 17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챔피언결정 4차전에서 SK를 77-55로 대파하고 4전 전승으로 단숨에 정상에 올랐다. 정규리그 막판 13연승과 전자랜드와의 4강 PO 3연승까지 더하면 시즌 마지막 20연승이라는 무서운 기세로 정상을 정복했다. 2007, 2010년에 이어 세 번째 우승이다. 팀의 전신인 KIA의 1997년 우승을 포함하면 네 번째 우승이다. 4차전에서 29득점을 뽑아낸 양동근은 기자단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양동근

 ◆코트의 사령관=유재학 울산 모비스 감독은 꾀가 많아 ‘만수(萬手)’라고 불린다. 작전 타임도 매우 아낀다. 경기 막판에 중요할 때 쓰기 위해서다.

 유 감독이 작전 타임을 아껴가며 경기를 운영할 수 있는 건 양동근 덕분이다. 공이 엔드라인 밖으로 나가거나 파울로 인해 경기가 끊기면 선수들도 잠시 호흡을 고른다. 하지만 양동근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유 감독에게 달려가곤 한다. 경기 흐름을 논의하고 간단한 지시 사항을 듣고 이를 동료에게 전달한다. 양동근이 완벽하게 야전 사령관 구실을 하기 때문에 굳이 작전 타임을 안 불러도 전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유 감독은 “보이지 않은 곳에서 큰 힘이 돼 준 동근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악착같은 수비=양동근은 공격도 잘하지만 수비를 더 열심히 한다. 유재학 감독은 물론 전창진·허재 등 다른 팀 감독까지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양동근을 칭찬하는 것도 이런 성실함 때문이다. 오죽하면 허재 KCC 감독은 상대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양동근을 두고 “들개 같은 선수”라고 평했다.

 챔프전에서 상대한 SK는 높이가 좋다. 양동근은 자신보다 키가 15㎝나 큰 박상오를 막아야 했다. 이 정도 키 차이면 파울을 해야 간신히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양동근은 들개처럼 뛰어다니며 박상오를 괴롭혔다. 박상오는 챔프전 4경기에서 평균 3.75득점에 그쳤다. 정규리그 기록 8.52득점에 훨씬 못 미쳤다.

 ◆희생하는 리더십=첫 우승을 차지한 2006~2007 시즌 양동근의 평균 득점은 15.7점으로 팀 내 국내 선수 중 1위였다.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에서 최우수선수도 독차지했다. 하지만 군복무를 마치고 팀에 복귀한 뒤 그는 플레이 스타일을 바꿨다. 그 사이 함지훈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주인공이 되려고 하면 팀이 망가진다. 2010년 양동근의 평균 득점이 11.4점으로 뚝 떨어졌지만 그 덕분에 모비스는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팀 전체의 밸런스를 먼저 생각하는 양동근이 있었기에 김시래·함지훈·문태영과 짝을 이룬 ‘판타스틱 4’가 환상적인 조직력을 뽐낼 수 있었다.

 이동훈 모비스 사무국장은 “가끔씩 양동근이 문태영의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격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이가 세 살이나 많은 문태영도 양동근의 말이라면 믿고 따른다 ”고 말했다. 양동근은 “유재학 감독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었다. 어쩌면 벌써 은퇴를 하고 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스승에게 영광을 돌렸다.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SK는 챔프전에서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아쉽게 시즌을 마감했다.

울산=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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