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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장타령 - 길현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정신이상증의 원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지만 아마도 그 가장 흔한 예로서는 환경이나 신상에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겨서 적응할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도가 지나치면 정신이상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잃게 까지 된다는 것이며 그러기에 전해 내려오는 말에도 사람이 너무 큰 횡재를 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주위에는 희한한 일들이 날로 늘어가고 요절·통곡을 해도 못다 할 현상들이 매일과 같이 보도되고 있는데 아마도 이러한 희한한 일들을 연출해 내는 주연급 인사들의 대부분은 이상과 같은 정신이상증에 걸린 갑작 부자들이나 갑작 정치인들이 아닌가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부정 등 속의 이야기는 이러한 방담형식으로서는 너무나 심각한 이야기고 차라리 여름철의 방담으로서는 좀 더 시원한 「풀」장 타령 같은 것이 어울릴 것 같다.
근자에 들리는 말로서는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축재를 한 사람들 사이에 집집마다 「풀」장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라고 들었다. 필자는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마침내 우리사회의 이상현상이 여기에까지 다다랐는가하는 소감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과문이기는 하지만 미국 같은 나라의 거부들도 도회지의 저택에 「풀」장을 만들어 놓는다는 일은 지극히 희소한 일에 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민들의 주택에도 집집마다 몇 개씩의 욕실과 수세식 변소가 달려 있고 물을 쓰기를 그야말로 물쓰듯하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그러한데 우리 주위에서 개인 집 「풀」장이 유행한다고 하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이상현상인가.
매년 여름철마다 물난리가 일어나고 변두리에서는 수도가 없는 집이 태반이고 시에서는 몇 개년 계획인가를 세워서 수돗물을 증산해야만 겨우 단수소동을 면할 수 있겠다는 이 판국 속에서 개인용 「풀」장에 몸을 담그고 수영을 즐겨야만 속이 시원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것이 과연 정상상태일수가 있단 말인가.
옛날 「로마」나 중국 같은 나라에서 혹은 오늘날의 미국 같은 나라에서 있다는 기가 막힌 호사와 사치라는 것은 각도에 따라서는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와 같은 현상은 도대체 어떠한 각도에서 해석해야만 제대로 해석할 수가 있단 말인가. 요즈음 국가적 체면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어찌 체면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체면을 지키려면 개인이고 국가이고 간에 어느 정도까지는 내용이라는 것이 있고서야 가능한 일이다.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데 어찌 겉치레만 가지고 체면이 유지될 수 있겠는가. <서강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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