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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공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16세기의 화가 「보수」의 그림에 광인을 치료하는 것이 있다. 돌팔이 의사가 광인의 머리를 칼로 쪼갠다. 발광의 원인인 돌멩이를 끄집어낸다는 것이다.
「발광을 치료하는 발광」이라 하겠다. 더욱 무지스러운 건, 광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악마를 쫓아낸다고 머리를 화덕 속에 넣고 굽는 일도 있었다. 이따위 잔학한 방법으로 사람을 잡으면 발광만은 틀림없이 멎을 것이다.
정신병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18세기만 해도 달에 있는 악령 「루나」 때문에 미친다는 해석이 서양에서 멀쩡하게 통했다. 「루너틱」(광인)이라는 말은 「루나」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은 「루나」보다는 합리적으로 설명하지만, 아직도 명확하게 원인이 밝혀진 건 아니다. 아니, 도대체 정상과 이상의 한계도 분명치 않다. 그저 어떤 사람의 행동이 그의 사회적인 일이나 능력을 「심하게」방해할 때 이상이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심하게」이상한 병자는 선·악의 감정이 약하고 자기가 저지른 결과에 무관심하다. 신체적 고통에 대해서도 별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살인도 겁 없이 해낸다. 이쯤 되면 사회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선진국에서는 정신건강법에 따라 이들을 강제 수용한다. 미국의 경우 2억 인구에 대하여 80만개의 「베드」를 마련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전체 의료시설의 반을 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3천만 인구에 「베드」가 단 1천5백개. 설사 정신건강법을 제정한대도 수용능력이 없으니 아무 소용이 없다.
언제 칼부림을 시작할지도 모르는 분들과 함께 「공포의 공존」을 유지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칠곡의 피비린내 나는 살인극으로 「노이로제」에 걸릴 사람이 있다면 그만큼 수가 또 늘어난 셈이다. 하루 빨리 많은 정신전문의를 양성하고 치료시설도 확충하도록 위정자가 노력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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