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원세훈맨’ 80% 넘게 물갈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국정원 핵심요직인 1급 부서장에 대한 대규모 물갈이 인사를 단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1급은 대공 및 국내 정보와 북한·해외 정보 등을 다루는 각 실국장들과 주요 지역 지부장들로 총 30명에 이른다. 16일 국정원에 따르면 남 원장은 1급 인사의 80% 이상을 새로 임명하거나 교체했다. 1급 부서장 20명 이상이 바뀐 셈이다. 물러난 인사들은 대부분 원세훈 전 국정원장 체제에서 임명된 부서장인 것으로 파악됐다. 국정원 측은 “정치색을 배제하고 국정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원칙에 따라 인사를 했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차장급 인사에 이어 1급 부서장 인선이 마무리되면서 남재준 체제의 국정원 진용이 완전히 갖춰지게 됐다.

 1급 부서장 가운데 남 원장의 최측근인 박승훈 예비역 해병준장이 총무국장으로 발탁되고, 남 원장 직속의 감찰실장에 장호중 법무부 감찰담당관(차장검사급)이 임명된 것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캠프에서 활동했던 박 총무국장은 사실상 이번 1급 부서장 인선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달 21일 남 원장 취임 이후 국정원을 남재준 체제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조직개편·인적쇄신 태스크포스(TF)를 이끌어왔다. 국정원 관계자는 “차장급 인사의 경우 청와대가 국정원장의 의견을 들어서 하지만 1급을 비롯한 내부 고위직 인사는 총무국장이 인사안을 짠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박 국장이 제출한 태스크포스의 평가 결과를 토대로 남 원장이 인사를 했다는 얘기다.

 내부 조직은 물론 비공개 공작사업에 대한 감찰과 직원 징계 등을 담당하는 감찰실장에 국정원 외부 출신인 현직 차장검사를 내정한 것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국정원 조직개혁과 내부기강 확립을 위한 포석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정원 1급 인사의 폭이 이처럼 커진 것은 박근혜 정부가 국정원 1, 2, 3차장과 기조실장 인사를 하면서 관장업무를 조정한 것이 배경으로 꼽힌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이후 1차장은 해외, 2차장은 국내, 3차장은 북한으로 3원화된 체제였으나 원세훈 전 원장 때 국내외에 대한 구분 없이 업무 성격과 직능에 따라 차장들이 나눠 맡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를 종전과 비슷하게 한기범 1차장이 북한과 해외국익정보를 맡고, 서천호 2차장은 대공수사와 대테러·방첩 등 보안정보를, 김규석 3차장은 사이버·통신 등 과학정보 업무를 맡는 방식으로 환원시키면서 인사 폭이 커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예상보다 큰 폭의 물갈이 인사로 인해 국정원은 술렁이고 있다. 곧이어 2~3급 단장·처장과 나머지 지부장에 대한 인사가 이어지는 등 내부적인 파장이 상당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일부에선 반발 분위기도 감지된다. 쇄신을 내세워 국정원 조직을 지나치게 흔들고 있다는 목소리다.

 국정원 직원들 사이에선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남 원장이 군 시절 인연을 맺은 측근을 과하게 포진시키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참모총장 시절 수석부관을 지낸 오현택(예비역 대령)씨를 정책보좌관에 앉힌 게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