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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복장도착증 밴드 '시스터즈'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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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슬로베니아 건물앞에서 시위대가 동성애자 인권 깃발을 펴고 있다.
TV슬로베니아 건물앞에서 시위대가 동성애자 인권 깃발을 펴고 있다.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에 참여할 가수 선정 문제를 두고 슬로베니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적 표현 자유 논쟁에 유럽 연합까지 가세했다.

동성애자 권익 보호 단체들은 세 명의 복장 도착자들로 이루어진 밴드 '시스터즈(The Sisters)'에 대한 논쟁이 슬로베니아 내의 뿌리 깊은 동성애 혐오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삼인조 밴드는 '온리 러브(Only Love )'라는 노래로 오는 5월 25일 에스토니아에서 열릴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 결선에 나갈 예정이다.

하지만 이 밴드는 의회, 인터넷, 언론 및 TV 토크쇼 등을 통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주간 네델로지(Nedelo)가 지난 3월 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슬로베니아 국민 중 51%가 이 그룹이 자국을 대표해서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에 나가서는 안 된다고 응답했다.

야당인 사회민주당(SDS) 야네즈 얀사 당수는 이 그룹이 슬로베니아의 '가치의 혼란'을 보여주는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인구 200만 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인 슬로베니아는 오는 2004년까지 유럽 연합 회원국이 되기를 갈망하고 있으며, 올 11월 프라하에서 열릴 NATO 정상회담의 새 회원국이 될 것이 유력한 상태여서 국제적으로 나쁜 인상이 생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유럽 의회 시민 자유·인권·정의 및 가정문제 위원회의 루제비스 반 데르 란 네덜란드 순번 위원장은 “지난 2001년 6월 미혼 여성의 인공수정에 대한 국민투표에 72%가 반대한 결과로 슬로베니아는 이미 안 좋은 평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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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비젼 콘테스트 참가자 선정 결과에 대한 논란과 함께 동성애자 권익에 대한 문제가 표면으로 떠오르면서, 우리는 슬로베니아가 어쩌면 아직 유럽 연합 회원국이 될만한 자격이 없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고 반 데르 란은 말했다.

그녀는 삶의 방식을 초월한 인간에 대한 존중이야말로 유럽 민주 사회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덧붙였다.

'시스터스'는 지난 2월 16일에 있었던 전자 투표에서 아주 낮은 지지를 받았지만, 두 명의 심사위원들이 이들에게 최고 점수를 주면서 슬로베니아 인기 가수 카르멘 스타벡을 제치고 유로비전 결선 진출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선정 규칙을 무시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부 TV 시청자들은 시청료 납부를 거부하기도 했고, 알렉스 스타쿨 'TV 슬로베니아' 사장은 재투표를 요구했다.

시스터즈:
시스터즈:"이것이 우리 삶의 방식이다"
이에 '시스터스'의 결선 참가 여부가 불확실해 지면서 동성애자 권익 단체들은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지난해에도 전자투표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상황에서 재투표는 동성애 문제와 관련된 찬반 투표 양상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슬로베니아 동성애자 인권 단체인 '레게비트라(Legetbitra )'의 미하 로비닉은 말했다.

슬로베니아 TV 협의회가 스타쿨의 재투표 제안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기 하루 전, 동성애자 단체들은 수도 류블랴나에 위치한 TV 슬로베니아 방송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시위자들은 국제적인 동성애자 권익 운동을 상징하는 거대한 무지개 깃발을 들고, '시스터스'를 상징하는 날개 달린 붉은 하트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또 한편에서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인터넷 대화방에 모여 라디오 방송국에 '시스터스'가 슬로베니아를 대표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항의 전화를 했다. '시스터스'를 지지하는 내용의 전화는 소수에 불과했다.

결국 TV 협의회는 일부 실수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재투표를 실시할 법적 근거가 미약하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해서 '시스터스'는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열리게 될 유로비젼 결선 진출 티켓을 거머쥐게 되었다. 하지만 유럽 의회의 반 데르 란은 여전히 슬로베니아 내 동성애자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고 보지는 않았다.

그녀는 "논란이 된 이번 슬로베니아의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 참가 팀 선정과정이 동성애 혐오증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슬로베니아 당국의 설명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말했다.

작업 치료학 전공 학생인 미스 말레나(22·본명 토마즈 미헬릭)와 농경제를 공부하고 있는 다프네 (28세·본명 세르코 블라스), 그리고 미용 학교에 다니고 있는 엠페라트리즈(21세·본명 댐얀 레벡) 세 명으로 이루어진 '시스터스'는 몇몇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이런 논쟁에 휘말리는 것을 피해왔다.

그들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두려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만약 우리가 두려워했다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것이 우리 삶의 방법일 뿐이다."

LJUBLJANA, Slovenia (CNN) / 오병주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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