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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위협, 밥상까지 건드리나 … 꽃게 경매량 67% 감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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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경제는 ‘심리’다. 연일 이어지는 북한의 적대적 언행은 꽃게잡이 배를 항구에 꽁꽁 묶는가 하면 가뜩이나 불황으로 힘겨워하는 기업과 가계 등 경제 주체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공포 심리는 정작 나라 밖이 훨씬 크고 깊다. 해외 기업인이 전쟁을 우려해 입국을 연기하고, 한국행(行) 관광객 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경제 전반에 드리운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걷어내기 위한 정부의 대응 속도가 한층 빨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심리 교란 목적이 뚜렷한 북한의 의도에 경제마저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업 차질’ 연평도 어획량 급감

12일 인천 옹진 수산도매장에서 도매상들이 꽃게·가오리 등을 둘러보고 있다. 이상 저수온 현상과 북한발 위협으로 봄 꽃게 어획량이 예년에 비해 40% 정도 줄었다. 지난해 이 시기에는 이곳 일일 꽃게 경매량이 12t에 달했지만 이날은 3분의 1 수준인 약 4t에 그쳤다. [김영민 기자]

12일 오전 7시, 인천 소래포구에 있는 옹진 수산도매장은 썰렁했다. 배 10척이 한꺼번에 들어올 수 있는 포구에 꽃게잡이 배들은 서너 척만 보였다. 부둣가에 황량히 널브러진 통발은 올해 꽃게잡이도 신통치 않다는 걸 단적으로 드러냈다. 오전 8시가 되자 시작된 꽃게 경매는 7분 만에 끝났다. 평소 같으면 20분 이상 경매가 이어진다.

지난해 이 시기에는 일일 꽃게 경매량이 12t(약 300박스)에 달했지만 이날은 3분의 1 수준인 4t에 그쳤기 때문이다. 현지 도매상인 일해냉동 정해영 상무는 “북한 위협 때문에 올해 꽃게잡이는 틀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통상 봄 꽃게잡이는 이달부터 시작해 6월까지 석 달간이다. 하지만 올해는 3월부터 시작된 북한의 위협 탓에 꽃게잡이가 시작도 못하고 위기를 맞았다. 예년의 경우 5월 말~6월 초가 돼서야 북한이 북방한계선(NLL) 문제로 서해에서 시비를 걸어왔지만 올해는 두 달이나 빨리 북의 위협이 시작됐다. 게다가 지난 3일 연평도에서 어선을 훔친 탈북자 이모(28)씨가 NLL을 넘어 월북하는 바람에 연평도 꽃게잡이는 사실상 ‘통제상태’가 됐다. 정 상무는 “올해는 저수온 현상으로 가뜩이나 꽃게 수가 적은 데다 이달 들어 꽃게 어선의 조업일수도 사나흘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조업이 확 줄면서 연평도 꽃게 어선들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인천으로 들어오고 있다. 게다가 겨울 서해에 나타난 저수온 현상으로 올봄 꽃게 어획량은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산지 가격이 오르자 소매업체인 대형마트도 ‘노심초사’다.

 롯데마트 이용호 수산팀 과장은 “10년 동안 꽃게를 거래했는데 경매가격이 kg당 4만원을 넘은 적이 거의 없다”며 “가격이 너무 비싸면 소비자가 아예 구매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품질 좋은 상품을 싼 가격에 들여올지 고민이 크다”고 밝혔다.

한-브라질 경협위 서울 개최 취소

 문제는 꽃게뿐이 아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25일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제5차 한·브라질 경제협력위원회’ 행사도 행사를 코앞에 두고 취소됐다. 이번 행사 때엔 브라질의 주요 주(州) 대표와 현지 기업인 30여 명이 방한해 철강·에너지·자동차 등 양국 간 전략산업 협력 방안이 집중 논의될 예정이었다.

전경련 관계자는 “브라질 현지 언론들이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을 잇따라 보도하자 한국을 방문하는 데 위험 부담을 느낀 것 같다”며 “주한 브라질 대사관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안심시키려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행 국제선, 호텔 예약률 뚝뚝

 관광·항공 업계도 북한발 리스크에 울상이다. 엔저 탓에 가뜩이나 일본 관광객이 예년보다 줄었는데 북한 악재로 다른 나라 해외 여행객들도 예약을 취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외국인 입국은 지난달 28일 3만7000명에서 6일엔 2만4000명으로 36% 나 줄어들었다.

 대한항공은 이번 달 한국행 국제선 예약률은 지난해보다 6%포인트 떨어진 72%에 그쳤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엔화 약세까지 겹친 일본발 예약률(67%)이 14%포인트 떨어진 건 그렇다 쳐도 꾸준히 늘기만 해 온 중국발 역시 6%포인트 떨어진 게 심상치 않다”고 말했다. 외국인 입국이 줄면서 호텔업계도 덩달아 예약률이 10~30%씩 떨어지고 있다. 바닷길도 심상치 않다. 지난 1일 중국인 관광객 500명이 승선할 예정이던 중국 칭다오~인천항 카페리호 운항은 취소됐다. 롯데관광 관계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위협으로 안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예년보다 중국 관광객이 10~15% 수준 정도 줄어든 상태”라고 말했다.

 유통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중국 정부가 지난 11일부터 지방정부별로 여행사에 긴급 통지문을 보내 한국 여행 업무를 신중하게 다루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롯데면세점은 중국인 매출이 전체의 30%(4월 기준)에 달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8일까지 중국 쇼핑객 매출이 전년에 비해 150% 늘었는데, 이들의 방한이 줄어든다면 매출에 타격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양말·속옷 생활용품 생산도 타격

개성공단이 잠정 폐쇄되면서 스타킹·양말과 속옷류 등 생활용품도 북한 리스크에 노출됐다. 롯데마트의 PB상품인 통큰 스타킹의 경우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로 인해 공급량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통업체들은 급하게 베트남·인도네시아 등지로 생산지를 돌리고 있으나 항공편 등 물류비 때문에 원가가 5% 정도 올랐다. 전문가들은 북한 리스크가 장기화된다면 해외 투자 유치에도 후폭풍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KOTRA가 해외 12개국 투자기관 14곳과 접촉해 대북 문제 영향을 물은 결과 ‘영향이 없다’는 응답은 9명(64.2%)이었다.

KOTRA 관계자는 “지난달 말 조사 때만 해도 대다수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이와 비교하면 한국에 대한 투자 매력이 다소 식는 듯한 조짐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과민 대응보다 차분히 대처해야

 무역협회는 남북교육팀을 중심으로 상황 분석을 진행하고 개성공단 입주기업협회 등을 통해 북한의 상황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창배 박사는 “이번처럼 북한 리스크가 장기적으로 간 적은 최근 10년 새 드문 경우”라면서도 "과민 대응보다는 침착하고 차분하게 대처하면서 내수와 경제 심리를 되살리는 처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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