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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수 안무 정구호 연출 미니멀한 굿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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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호 24면

한국무용이라고 치렁치렁한 한복으로 몸을 감싸고 예스러운 춤사위만 되풀이하고 있으란 법은 없다. 이 시대에 걸맞은 한국적 아름다움의 탐색이란 모든 전통예술 분야의 화두다. 그럼 한국무용에서는 어떻게 현대성을 끌어낼 수 있을까. 국립무용단이 현대무용가 안성수와 패션디자이너 정구호에게 그 열쇠를 구했다. 국립무용단이 올해부터 진행하는 안무가 초청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자 지난해 국립발레단의 창작 모던발레 ‘포이즈’로 찰떡궁합을 과시했던 안·정 콤비의 한국무용 첫 도전이다.

국립무용단 ‘단’, 4월 14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이들이 꺼내든 열쇠는 ‘미니멀’. 수학적이고 분석적인 안무를 추구하는 안성수 안무와 패션에서도 미니멀리즘으로 이름 높은 정구호 연출은 서양 미학과의 팽팽한 긴장관계 속에서 한국적 춤사위를 해체하고 그 아름다움의 본질만 추출해 세련되게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몸에 착 붙는 검정 상의에 흑·백·적·녹의 하늘하늘한 주름치마를 두른 것이나 파격적인 상반신 탈의를 감행한 것부터가 우리 춤사위가 만들어내는 신체 선의 아름다움을 군더더기 없이 보여주기 위함이다.

현대사회에서 미의 기준이 서양에 있듯, 이 무대의 전제 역시 서양적 아름다움이다. 작품 타이틀인 ‘단(壇)’이 종교나 권력·신분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쓰였다는 설명처럼, 종교처럼 신봉되고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서양 미학이 바로 단 위에 올라간 고귀한 신분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미는 단 위에 오를 수 없을까? 단 위에 올라갈 만한 모던한 한국의 미란 어떤 것일까? 두 사람이 미니멀하게 보여주는 한국적 미의 본질은 합리적인 균형미를 추구하는 서양 미학의 규칙을 파괴하는 즉흥의 미다. 마치 살짝 찌그러진 달항아리에서 낯선 미적 쾌감을 맛보는 것처럼 거기엔 고도의 세련됨이 있었다.

움직임과 방향성을 자로 재듯 정확히 계산해온 수학적 안무가의 작품답게 이 무대의 모든 것은 숫자 3으로 나눠 떨어진다. 동양 철학에서 완벽을 의미하는 숫자 3을 기준으로 수학적인 규칙의 미를 전제한 것. 작품은 전체가 3막으로 나뉘고 각 막은 3장씩 총 9장으로 구성된다. 암흑의 무대에는 단을 제외하면 유일한 무대장치인 눈부신 형광등이 역시 3의 배수라는 수학적 규칙을 내포한 채 배열되고 변형된다. 아홉 명씩 네 줄로 질서 있게 줄지어 나타나는 무용수들의 남녀 비율은 1대 3을 이루고, 빨간 치마와 초록 치마의 비율도 1대 3이었다.

수학적 균형미 흔드는 즉흥적 춤사위
이런 자로 잰 듯한 규칙성을 흔드는 것이 무용수들의 춤사위다. 한국무용의 춤사위를 기본으로 발레와 현대무용의 다양한 동작을 가미한 안무는 언뜻 국적 불명으로 보이지만 불규칙의 규칙이 드러나는 순간 한국성을 획득한다. 1막을 여는 4인무와 2인무부터 서로 빈틈없이 호흡을 맞춘다기보다 미묘한 시간차를 두고 따라다니는 그림자처럼 느슨하게 움직인다. 36명의 무용수 전원이 4열 종대로 늘어선 군무로 이어지면 더 분명히 보인다. 질서 있게 정렬해 ‘백조의 호수’의 그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좌우 대칭으로 딱 떨어지는 군무를 연출할 듯싶지만 우리 춤의 기본인 즉흥성이 시각적으로 예견되는 규칙성을 여지없이 파괴할 때 보다 큰 스펙터클이 생산된다.

서로 엇박자로 순환하는 불규칙한 형태가 혼란스럽기보다 자유로운 해방감을 주는 것은 ‘미니멀한 굿판’이라는 안무가의 정의처럼 조금씩 엇갈린 36명의 움직임이 단 한 명 무당의 해체된 춤사위로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한 사람의 연속동작을 촬영한 사진처럼 말이다. 알록달록 강렬한 원색이 충돌하는 무당 옷의 이미지도 보색 대비라는 본질만 추출해 빨강과 초록 치마로 분리시켰다. 똑같은 디자인의 의상을 입고 눈썹을 지워 개성을 배제한 것도 한 사람의 자아가 분열된 모습이란 추측에 힘을 싣는다.

완전무결하게 들리는 서양 클래식과 악기 구성을 해체시켜 낯설게 들리는 즉흥적인 호적 시나위가 각 장마다 교차하는 음악도 미니멀한 본질로 돌아왔을 때 한국적인 것이 얼마나 세련될 수 있는가를 청각으로 뒷받침했다. 물론 단 위에 모셔진 것은 서양음악의 아름다운 화성이지만, 장엄한 바그너의 오페라를 배경으로 그리스 신전에 모셔진 신들의 그것처럼 보이던 움직임이 해체된 시나위의 리듬을 만날 때 부각되는 현대성은 진정 놀랄 만하다.

흔히 한국적인 것과 전통은 구별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전통을 현대화한 한국적 아름다움을 찾겠다며 이것저것 더해 본다. 하지만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면 어떨까. 안성수·정구호의 무대는 뺄셈과 나눗셈을 통해 우리 것을 얼마나 현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느냐를 웅변했다. 비단 한국무용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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