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또 다른 그림자, 성폭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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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호 31면

분쟁을 해소하고 전쟁으로 파괴된 사회를 재건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때때로 중요한 점을 간과한다. 분쟁이 일어난 사회 구성원들 간의 불화를 조정하는 게 어려운 진짜 이유를 간과하기 때문이다. 전쟁 중 발생하는 강간 및 성폭력이 바로 그런 원인 중 하나다.

 약 2주일 전 콩고민주공화국을 방문했다가 성폭행을 당한 5세 여자 아이의 사진을 보게 됐다. 현지의 난민캠프·병원 등을 방문하면서 수많은 끔찍한 성폭력 피해 사례를 들었다. 땔감을 구하러 갔다가 공격을 당해 목숨이 위태로운 여성의 사례도 있었다. 피해 여성들의 삶과 가정은 무너졌고 그들은 가족들로부터도 외면당한다. 그러나 정작 가해자들은 가벼운 처벌만 받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 20년간 내전을 벌인 보스니아, 르완다, 리비아, 시에라리온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특히 내전 중 발생하는 강간은 정치적 라이벌 혹은 특정 인종이나 종교를 공격하기 위한 일종의 ‘무기’로 이용된다. 이로 인한 인간적인 상처는 쉽게 아물지도 않으며 지울 수도 없다. 가정과 공동체는 무너져버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리아에서 이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 지도자들에겐 이런 위기 상황을 타개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다음과 같은 여러 장애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많은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끼고 사회적으로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워 앞에 나서기를 꺼린다. 대부분 피해자들을 위한 적절한 신체적·심리적 지원 부족 때문에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둘째, 처벌을 하려 해도 법정에서 필요로 하는 증거를 모으는 데 어려움이 많다. 따라서 아주 적은 숫자의 피해 사례만 기소로 이어진다. 1996년 이후 콩고민주공화국에서만 50만 명의 여성이 강간을 당했지만 법정에 선 숫자는 매우 적다. 셋째, 내전을 겪고 있는 경우 성폭행은 2차적인 문제로 치부되기 일쑤다. 피해자들은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다. 가해자 처벌이 아예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마지막으로 성폭행 피해자들을 돕는 유엔 기구나 인권단체 등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모두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다.

 지난주, 나는 주요 8개국(G8) 외무장관들과 함께 무력 분쟁 와중에서의 성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한 의지를 재확인하는 성명서를 냈다. 잔인한 성폭력 범죄 관련 문제를 해결하고 희생자들에 대한 포괄적 지원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이와 함께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노력도 기울이려고 한다. 성폭행과 성폭력이 제네바 협약을 심각하게 위반한다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더 많은 지원금과 피해자들을 위한 장기적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한다. 또 성폭력에 대한 조사 및 기록을 위한 기준을 세울 새로운 국제의정서를 만들 계획이다.

  이런 조치들은 희생자들에게 힘을 실어줘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장기적 지원을 약속하는 것이다. 오는 목요일 런던에서 이와 관련된 합의가 잘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런 행보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근대 전쟁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나 분쟁 중 발생하는 성폭력과 성폭행에 대 해서는 강력한 국제적 연합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G8이 노력해야 한다.

 G8은 국제적 영향력을 갖춘 강한 경제대국들이다. 각 회원국이 함께 노력한다면 세계를 위한 실질적이고도 지속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가 그 지속적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전쟁 중 성폭력을 무기로 삼은 이들을 단죄하고 희생자들이 두 번 버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모든 자유국가 정치인들의 의무다.



윌리엄 헤이그 옥스퍼드대 졸업 후 1989년 의원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 1997~2001년 보수당 대표를 지냈다. 2010년 5월 외무장관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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