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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내수증가율 22개월만에 최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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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소비심리가 예상 외로 급격히 가라앉고 있다. 여기에 유가 상승.세계 경기 침체 등에 따라 수출마저 둔화될 경우 경기가 더욱 불확실해질 전망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는 것도 미래를 어둡게 한다. 해외 투자자들도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이 확연히 드러난 뒤에야 본격적인 한국 투자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들도 "가장 큰 문제는 정책의 불확실성"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안팎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급격한 경기 후퇴를 막기 위해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 진작에 나서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전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9일 "경제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감세나 금리 조정보다 지난해처럼 예산 집행점검반을 통해 재정 지출 활성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냉랭한 시장 경기=국내 최대 전자양판점인 전자랜드21은 최근 비상이 걸렸다. 주력 품목인 데스크톱 컴퓨터(PC)의 1월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20%가량 줄었기 때문이다.

전자랜드 이봉희 영업본부장은 "4년 전에 대거 보급됐던 인터넷 PC가 교체될 시점이라 이달의 매출이 늘 것으로 기대했는데, 경기 하락으로 인한 소비 심리 위축을 이겨내지 못했다"며 "이번 매출 부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에 민감한 자동차.가전 업계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국산 자동차의 내수 판매는 지난 20일 현재 총 6만5천6백63대로 전월 대비 10.7%나 준 것으로 집계됐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1월이 통상 비수기이긴 하지만 최근 소비 심리 위축은 심각한 지경"이라고 말했다.

에어컨 업계 관계자는 "예년과 달리 전화 문의만 올 뿐 소비자 반응이 냉랭한 편"이라며 "지난해에 비해 최고 15%까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화점 업계는 '1월 이후' 상황을 더 걱정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1월 매출 신장률(전년 동기 대비 12%로 예상)은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 나은 수준이나 지난해보다 설이 빨랐던 점 등을 고려하면 호전된 게 아니다"며 "현재의 분위기를 보면 다음달부터는 매출 감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런 실물 경기는 통계청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통계청은 지난해 12월 산업활동 조사 결과 도소매 판매 증가율이 1.9%에 그쳐 2001년 2월(1.6%) 이후 2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특히 백화점 판매 부문은 13.8%나 감소했다. 이는 1998년 10월 20.7% 감소를 기록한 이후 가장 큰 것이다. 이에 따라 소매 부문 전체 판매는 1998년 11월(-6.1%)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신승우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대선을 맞아 백화점들이 할인행사를 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야 하지만 내수가 위축되고 있는 점은 지표로도 일부 확인됐다"고 말했다.

◇수출이 버텨줄까=생산.출하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수출시장이 비교적 탄탄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수출은 27.4%(전년 동기 대비) 증가한 1백51억달러에 달했다.

이에 따라 12월 중 생산은 전년 같은 달보다 9.5% 늘었다. 자동차(전년 대비 45.9%).반도체(23.9%).영상음향통신(17.4%).기계장비(13.07%) 등이 주도했다.

출하도 전년 같은 달에 비해 9.1% 늘어 14개월째 증가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국내 소비가 부진해지면서 재고는 지난달 1.2% 늘며 12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투자도 전년 같은 달보다 2.5%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해외 변수들도 심상치 않다. 최근 환율 하락으로 성장 동력인 수출에 대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유가 상승으로 제조업체들의 경쟁력 하락도 우려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증산을 결정했지만 미국.이라크 전쟁 우려 등으로 불안 요소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북핵 문제도 변수다.

◇정책 혼선이 위기 부를 수도=새 정부의 정책 방향 자체도 변수 중의 변수다. 상당수 국내외 기업이 인수위에서 흘러나오는 설익은 정책, 이를 정리하는 의사결정 과정 등을 주시하고 있다. 자신들의 투자 계획을 무산시킬 새 정책을 노무현 대통령 정부가 들고 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DJ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해온 공기업 민영화.경제자유구역 구상 등에 대해 새 정부가 재검토에 나섰고, 조흥은행 매각도 대통령 당선자가 매각에 반대해온 노조측 인사들을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매각 작업이 재조정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시래.허귀식 기자 <sr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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