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터클로즈의 실인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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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방화와 폭행의 혐의로 재판중인 미 공군의 「콕스」 하사가 『거짓 증언을 한 자들을 몰살하겠다.』는 협박장을 증인들에게 보냈다. 그는 또 증인들에게 1천6백불을 줄테니 위증을 해달라고 제의한 일도 있다. 심지어는 송탄 읍내의 술집에 나타나서 한 잔하다가 미군 당국에 연행된 일도 있다니 아연실색 할 노릇이다. 재판 받고 있는 피의자가 자유로이 나돌아다닐 수 있고, 증인들을 협박하는 형편에서 올바른 재판이 가능하겠는가. 피의자를 원칙적으로 구속하는 것은 바로 「콕스」 하사가 하고 있는 것 같은 짓을 막기 위해서다.
한·미 행협 발효 후 처음으로 한국이 행사하는 재판권이 이 지경으로 된 것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준다. 미군 측은 행협 22조 5항의 「커스토디」라는 용어를 「구금」이 아니라 금족처럼 자유로운 행동을 제한하는 일종의 보석 상태라고 해석하고 있다. 범인이 도망할 수 없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고 언제나 법정에 나갈 수 있기 때문에 가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구금상태로 해석하는 상태 미군에게는 술집에 가서 한 잔 할 수도 있고 협박장을 써 보낼 수 있는 상태라면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부 몰지각한 미군의 행패와 범죄는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로 우리는 미군 전체를 나쁘게 생각지는 않는다. 범죄적인 인물이나 깡패는 어느 사회나 단체에도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이번의 「미군 당국」의 석연치 않은 태도는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를 던져주는 것이다. 쌍방간에 엄청난 견해의 차이를 낳게 한 「커스토디」라는 용어의 의미를 평등하고 공정한 입장에서 다시 확정해야겠고, 미군 당국은 용어의 해석에 집착하는 것을 능사로 삼을 게 아니라, 양국의 우호에 행여 금이 가지 않게 성의있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많은 한국사람은 미국에 대해서 「샌터클로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별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이런 소박한 생각이 어리석은 것은 사실이고 미군 당국이 이에 얽맬 필요도 없겠으나 「커스토디」 때문에 「샌터크로즈」가 인심을 잃는다면 서로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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