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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민족 - 길현모<서강개 교수 서양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극성스럽게 자기 자신을 문화 민족 이노라고 강조하는 국민도 드물 것이다. 무엇이건 자기 자신의 것을 지나치게 자랑하려는 태도란 일반적으로 소아적인 성향으로서 빈축이나 연민을 사게되기가 일쑤이지만 특히 이상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 동기나 결과에 대해서 좀더 깊은 관심이 있어야만 하겠다.
우선 자기민족의 우수성을 과장하는 독선적인 습성은 침략민족의 자세 속에서 그 전형적인 것을 찾아 볼 수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민족 말살의 위기 속에서 자라난 오랜 저항 정신의 유풍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화 교육이 잘못되고 있다는 가장 좋은 예는 국민학교 아동들의 교과서에 잘 나타나 있다. 거기에는 우리 조상들이 이룩해 놓은 문화적 업적이 최상급의 찬사와 더불어 나열되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고도의 문화민족이라는 점이 거듭거듭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건 과거의 문학 업적은 가능한 한 과장 되어야만 하고 이를 비판하는 것은 「터부」라고 생각하는 편협한 사고방식이 우선 이러한데서 부터 노골적으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아동 교육에만 국한 될 수 있는 부분적인 현상만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문화를 논하며 지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문화인들 중에도 문화재와 문화와를 완전히 혼동하고 있는 위험한 인물들이 허다히 있는 것이다.
민족의 문화란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산 사회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과거 역사가 남겨놓은 문화재란 이러한 산 사회에 곁달린 부록의 비중율을 차지할 수 있음에 불과한 것이다. 만일 과거의 문화목록의 내용이나 연대에 따라 문화민족의 등급이 매겨진다면 세계 1등의 문화민족으로서의 영예는 틀림없이 「이집트」사람들이 차지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몰려 받은 문화재와 오늘날의 그들의 문화와 어느 정도의 산 관련성이 있겠는가.
현실 속에서 찾을 수 없는 민족적 자긍을 과거에로의 도피속에서 구하려고 하는 태도 이상으로 우둔하고 비열한 태도는 없다.
우리의 문화 관념을 하루 속히 외국인들을 위한 관광전시의 수준으로부터 구출하여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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