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보리피리 시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뜰 앞을 나서면 파아란 보리밭이 멀리 펼쳐진다. 5월의 훈풍이 보리밭에 잔물결을 일구고 지나간다. 어린 시절 오빠를 졸라 얻어 불던 보리피리 소리도 들릴법한 한나절…. 일손을 멈추고 이랑 사이로 나서 본다. 개구쟁이 한 떼가 수로를 건너 내 옆을 지나가는데 모두들 장난에 열띤 천진스런 얼굴이다.
○…그들은 모처럼 생각에 잠긴 내 심정을 알기나 한 듯 우르르 보리를 꺽어 피리를 만들어 불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 피리소리에 나도 모르게 그 무리속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 본 그립던 여음이다. 삐이삐이….
그러나 나는 어느새 그 애들을 나무라며 밭에서 쫓아내는 어른이 되고 있었다. 『보리를 그렇게 꺽으면 되나』.
○…단발머리를 나부끼며 모여 앉아 까맣게 돋아난 보리를 잘라다 김치도 담그고 풀각씨도 만들던 시절은 이제 아득한 옛날이 되었다.
싱그럽도록 푸른 보리는 해마다 먼 고향 아득한 남쪽을 그립게 하건만 그때 그 소꿉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김순희·주부·대전시 태평동 505 전용섭씨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