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가장 늦은 눈, 봄 어디 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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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이 불고 비가 내리는 등 변덕스러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9일 서울 명동에서 비와 함께 갑자기 바람이 불자 행인들이 주춤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4월 날씨가 심상찮다. 봄이 무르익어야 할 시기지만 9일 서울에선 진눈깨비가 날렸다. 서울 종로구의 서울기상관측소 기준으로 오후 2시56분부터 3분간이었다. 쌓이지는 않았지만 1993년 4월 10일 이후 20년 만에 서울에선 가장 늦은 눈이 내린 것이다.

 기온도 뚝 떨어졌다. 이날 아침 서울의 기온은 5.2도로 평년(1981~2010년 평균)보다 2도 낮았고, 낮 기온은 10.7도에 머물러 평년기온(17.4도)보다 무려 7도 가까이 낮았다.

 바람도 거셌다. 초속 17m 이상이면 태풍급 강풍으로 분류되는데, 서울에선 이날 17m 안팎의 강한 바람이 불었다. 태백산맥을 끼고 있는 강원도 양양·정선·고성 등지에서는 이날 오전 순간최대풍속이 초속 26m에 달했다. 아침 기온이 영하 9.3도까지 떨어진 설악산에는 한겨울과 다름없는 바람이 불었다. 강원지역뿐 아니라 이날 오전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는 초속 20m가 넘는 강풍이 몰아쳤다. 초속 20m가 넘는 강풍에는 기왓장까지 날아갈 수 있다.

 4월 한파의 이유는 한반도 주변의 공기 흐름이 정체돼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은 “러시아 캄차카 반도와 일본 동쪽 해상에 형성되어 있는 상층 저지(沮止·blocking) 고기압의 영향으로 당분간 평년보다 낮은 기온을 보이며 쌀쌀하겠다”고 예보했다. 공기 이동을 차단하는 고기압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동쪽으로 빠져나가야 할 저기압이 북한 상공에서 ‘정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북한 지역의 지상 5㎞ 상공에는 영하 35도의 찬 공기 덩어리가 내려와 있는 상태다.

 기상청 장현식 통보관은 “평상시 이 무렵이면 중국 남부에서 동진한 이동성 고기압이 한반도를 주기적으로 통과해 맑고 포근한 봄 날씨가 나타나는 게 보통인데 올해는 저지 고기압 탓에 기압계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쌀쌀한 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11일까지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비나 눈이 조금씩 내리는 곳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12일쯤 저지 고기압이 서서히 물러가면서 주말인 13일과 일요일인 14일에는 평년기온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다음주 초반에도 평년기온을 크게 밑도는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예보됐다.

 이와 관련, 최근의 쌀쌀한 봄 날씨는 극지방의 추운 공기 흐름이 강약을 반복하는 ‘북극진동’의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영국 등에서 폭설과 추위가 나타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의 김백민 박사는 “북극진동이 발생하면 전 지구적으로 공기 흐름이 느려지면서 지역적으로 정체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번 고기압도 북극진동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글=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저지 고기압(blocking high)=고위도(북위 45∼70도) 지역에서 정체하거나 매우 느리게 이동하는 온난 고기압을 말한다. 일기도 상에서는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진행하는 저기압의 진로를 가로막는 것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저지 고기압의 발생은 제트기류의 불안정과 지형 등에 관련이 있기 때문에 특정한 곳에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계절적으로 봄에 가장 많고 여름에 적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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