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가대표·프로선수, 한의사·주부 … 1830명이 1000만원 이상씩 불법 베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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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구모(41·무직)씨는 2011년 1월 우연히 스마트폰으로 스포츠토토 사이트에 접속했다. 한 회당 10만원까지만 살 수 있는 합법 스포츠토토와 달리 무제한 베팅이 가능한 불법 사이트였다. 구씨는 처음에는 몇 만원 단위로 도박을 하다 돈을 잃게 되자 액수를 100만원 단위로 올렸다. 도박자금으로 쓰기 위해 지인들로부터 3000만원을 빌렸으나 이마저 모두 날렸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이후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구씨는 그해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에서 학원강사로 일하는 서모(33)씨는 최근 2년간 2119회에 걸쳐 7억8000만원을 베팅했다가 상당액을 잃었다. 서씨는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에 무심코 접근했지만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경기경찰청 제2청 광역수사대는 9일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운영한 5개 조직과 도박자 1865명을 적발했다. 이 가운데 불법 사이트를 운영하며 20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이모(53·여)씨 등 3명을 구속했다. 또 회원으로 가입해 도박을 한 김모(35·여)씨 등 1830여 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1인당 1000만원 이상씩 베팅한 경우다. 구씨를 포함해 4명은 수천만원을 잃고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불법 스포츠토토 적발 규모로는 최대”라며 “직업·계층을 망라해 불법 스포츠 도박이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적발된 도박자의 직업은 대학생·군인·회사원·가정주부 등 다양했다.

 전직 프로축구 선수와 전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 한의사도 불법 스포츠 토토 회원으로 가입해 상습적으로 도박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유일의 합법 베팅 사이트는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발행하는 스포츠토토뿐이다. 축구와 야구·농구·배구 등을 대상으로 운영되며 19세 이상만 참여할 수 있다. 반면 불법 스포츠토토의 경우 연령 제한이 없다. 종목도 다양해 전 세계 스포츠를 대상으로 연중무휴 운영한다.

 경찰 관계자는 “스마트폰 보급으로 사이트 접근이 쉬워진 데다 불법 사이트의 경우 연령 제한이 없고 프로그램이 많아 청소년까지 도박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불법 스포츠토토 시장 규모는 10조원이 넘어 합법 시장의 5배에 이른다.

 게다가 합법적인 스포츠토토와 달리 제한액이 없다. 어떤 사이트는 베팅 상한액이 1000만원대다. 심재훈 광역수사대장은 “불법 토토는 베팅한 게임에서 이겼을 경우 바로 입금해 주는 방식 등으로 도박자를 유혹한다”고 말했다.

 또 ‘운’에 의존하는 다른 도박과 달리 각 팀의 전력과 경기 흐름을 파악해 예상 스코어를 꺼내 놓을 수 있는 특징을 이용해 스포츠 매니어까지 끌어들이고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유명 방송인이 자신의 실력을 믿고 취미 삼아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하다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등에 따르면 현재 운영 중인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는 1000여 개에 달한다.

의정부=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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