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 마지막 연설은 이념적 동지 레이건 애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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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마지막 순간에 병마에 시달렸던 로니(로널드 레이건의 애칭)는 눈을 감은 뒤에야 자신을 되찾았습니다.”

 8일 타계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영국 정치인 특유의 위트나 말재주는 없었지만, 직설적 표현을 써서 정곡을 찌르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렇듯 냉철한 연설가로 정평이 나 있던 대처의 마지막 공식 연설은 어느 때보다도 감정적인 것이었다. 바로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을 위한 추도사였다.

 2002년 3월 뇌졸중을 겪은 대처는 이후 공식석상에서의 연설을 중지했다. 하지만 2004년 6월 레이건이 세상을 떠나자 대처는 이념적 파트너였던 그를 위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의사의 권고로 직접 단상에 서는 대신 추도사를 읽는 영상이 장례식장에서 방영됐다. 마거릿대처재단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대처는 뇌졸중 후유증 탓인지 다소 어눌한 발음도 있었지만, 예의 위엄 있는 모습으로 ‘위대한 미국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대처는 “그는 미국과 동맹국들이 자유에 대한 믿음을 되찾도록 영감을 줬다”며 “그는 진정 하늘이 낸 사람이었다”고 고인을 기렸다.

 특히 레이건의 힘겨웠던 알츠하이머병 투병을 두고 대처는 “세상을 떠나기 전 몇 해 동안 로니의 마음은 병으로 흐려졌다. 하지만 이 먹구름은 이제 말끔히 걷혔다. 그는 이제, 지상에서 보낸 어떤 때보다도 더 자신다운 모습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또 “이제 로니의 마지막 여정에, 천국의 아침이 밝아오며 트럼펫이 울릴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당시는 대처가 정신적·육체적으로 쇠약했던 시기라 먼저 세상을 떠난 동지를 향한 축복이 더욱 청중의 가슴을 울렸다. 대처는 바로 1년 전인 2003년 6월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남편 데니스를 잃었다. 치매도 앓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이건의 부인인 낸시(92) 여사는 8일 “로니와 대처는 자유에 헌신하고 공산주의를 끝내기로 결의했던 ‘정치적 솔메이트’였다”란 내용의 애도 성명을 냈다. 이어 “대처는 명확한 비전과 확고한 결단으로 소련의 붕괴를 가져오고 수백만 사람들의 자유를 쟁취할 수 있게 했다”고 회고했다. 낸시는 이날 MSNBC 방송 인터뷰에서 “남편과 대처는 첫 만남부터 친구이자 동지가 됐다”며 “남편이 첫 국빈 만찬과 마지막 국빈 만찬을 베풀었던 사람이 바로 대처”라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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