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 총리 "북핵 문제 풀기 위해 한·미 연구팀 만들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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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의 접촉을 피해 온 고건(얼굴) 전 국무총리가 모처럼 입을 열었다. 북핵 문제에 관해서다. 그는 하버드대 케네디스쿨(행정대학원)과 아시아센터의 공동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고 지난 26일 돌아왔다. 30일 서울 연지동의 개인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자료와 편지들을 정리하고 답장을 쓰느라 분주했다. 예고 없는 기자의 방문에 당혹해하면서 입을 열었다.

"한국과 미국의 핵 관련 전문가들이 북핵 문제를 공동으로 연구,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연구팀을 만들어 볼까 합니다."

하버드대 벨파센터 내 핵관리(MTA:Managing The Atom)연구소 짐 월시 소장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월시 소장이 "한.미 양국의 민간학자들이 북핵 문제에 대해 공동 연구를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고 전 총리는 "좋은 생각이라고 판단해 산파 노릇을 맡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소에는 애시턴 카터, 스티븐 밀러 교수 등 핵 문제와 국제정치에 정통한 권위 있는 전문가와 학자들이 상당수 참가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미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카터 교수는 클린턴 정부 시절 대북특사였던 윌리엄 페리 당시 국방장관과 함께 방북했던 '페리 프로세스'의 기획 책임자이기도 하다.

고 전 총리는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해 나갈 한국 쪽 민간 연구소나 학자들을 물색하고 있다. 그는 "잘되면 북핵 문제를 푸는 데 꽤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이번 미국 방문의 성과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한국과 남북관계에 대한 미국의 조야와 학계의 오해를 풀고 (한국에 대한) 이해를 많이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비공개로 진행된 하버드대 교수들과의 간담회에서 진지한 대화가 오갔다며 대화 내용을 소상하게 소개했다.

"놀라운 것은 (미국인들이) 경협을 통해 우리가 북한에 거액의 돈을 주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더라." 그러면서 그는 "개성공단 건설비는 남한 기업에 지급된 것이고, 북한에 준 것은 ㎡당 월 1달러의 토지임차료와 월 55.5달러인 북한 근로자 인건비뿐이라는 사실을 설명해 주니까 놀라더라"고 전하면서 한.미 간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김영삼.김대중 정부에 이어 현 정부에서 총리와 서울시장 등을 지냈다. "전.현직 대통령과 만나 북핵 문제를 논의해 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그렇게 하면 너무 정치적이 되는 거지…"라며 조심스러워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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