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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고대 그리스에도 섬마다 조세피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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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조세피난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무역상들은 도시국가 주변의 섬들을 물품 창고로 이용했다. 목적은 세금 회피였다. 아테네처럼 번화한 도시국가에서는 외국산 물품에 세금을 매겼다. 세율은 2%쯤으로 전해진다.

 외딴섬 같은 역외 지역으로 물품을 빼돌리면 세금 회피 말고도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역외 지역에서는 정부로부터 허가와 승인을 받거나 감독을 받을 일도 없다. 정부의 규제가 미치지 않기 때문에 언제라도 자유자재로 물품을 처분할 수도 있다. 이런 섬들이야말로 정부 규제 피난처이자 보물섬이었던 셈이다. 현대적 의미의 조세피난처 상당수가 섬인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영국 본토와 아일랜드 중간에 위치한 ‘맨섬’이 그런 경우다. 노르만족이 영국을 정복하던 11세기부터 조세피난처로 이용되기 시작한 맨섬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2년 조세피난처로 꼽았던 전 세계 35개 지역의 한 곳이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역시 섬이다. 카리브해 동쪽에 위치한 이 섬은 콜럼버스가 항해길에 발견하면서 이미 15세기부터 조세피난처로 활용돼 왔다. 조세피난처로 유명한 케이맨제도·마셜제도·쿡아일랜드·몰타·사모아 역시 섬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현대적인 의미의 조세피난처로는 역시 스위스를 빼놓을 수 없다. 아름다운 요들의 나라인 스위스가 탈법의 소굴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의 조세피난처가 된 데는 그만한 정치적 사연이 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패전국 독일은 물론, 전쟁을 치른 유럽 각국은 막대한 전비 처리와 복구 비용으로 재정난에 시달린다. 이들 나라는 급격히 세율을 올려 구멍난 재정을 메울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 사이에 둘러싸여 중립을 선언했던 스위스는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 있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세금을 올리지 않은 스위스로 외국의 기업과 부자들이 세금 폭탄을 피해 몰려들었다. 달리 자원이 없고 산업이 없던 스위스엔 이 돈에 기댄 금융업이 효자산업이 됐다. 스위스 은행들은 이를 통해 지난 100년 가까이 조세피난자들의 도피처를 자임해 왔다.

 조세피난처 전성시대는 21세기 들어 기울기 시작했다. 돈이 해외로 앞다퉈 빠져나가면서 세금 수입에 비상이 걸린 선진국들은 조세피난처에 대한 고삐 죄기에 나섰다. 이 여파로 최근 세계 각지의 비밀계좌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해외 계좌에 감춰둔 ‘검은돈’이 들통 나는 부자와 유명인들이 한국에서도 속출하고 있는 이유다.

김동호 기자

조세피난처(tax haven) 법인의 소득 전부 또는 상당 부분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국가나 지역을 말한다. 모든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되기 때문에 탈세와 돈세탁용 자금거래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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