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盧에 가까이…" 요직 경쟁 치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노무현(盧武鉉)사람들' 내부의 파워게임이 치열하다.

인수위가 무대다. 盧당선자와 가까운 정치인과 오랜 지인(知人)들, 자문교수들, 관료들이 권력의 중심에 다가서기 위해 경합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경합이 치열하다 보니 때론 갈등의 모습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김병준 대 김진표=청와대 정책실장(장관급)을 향한 경합은 이미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1천여명이 넘는 盧당선자 자문교수 그룹의 상당수가 김병준(金秉準)교수를, 관료 그룹은 김진표(金振杓)인수위 부위원장을 밀고 있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대통령 프로젝트를 총괄할 청와대의 정책 사령탑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인수위 주변에선 대통령에 이은 '청와대 넘버 2' '경제 부통령'이란 말이 돌 정도다. 이 때문에 그 갈등은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실정이다.

얼마 전 金부위원장이 언론사 포럼에서 "집단소송제가 도입돼 기업의 경영투명성이 정착되면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경제1분과의 한 위원은 "월권(越權)이다. 경제분과 회의를 거쳐 문제삼겠다"며 흥분하다가 "잘라야겠다"고 원색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최근에는 盧당선자 자문교수 그룹 대표자들이 서울에 모여 "우리는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을테니 金교수가 반드시 정책실장을 맡아야 한다"고 의견을 모으는 일까지 벌어졌다. "관료 출신들에게 맡겨 놓으면 개혁정책이 표류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관료 출신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학자들의 '비현실성' 등을 우회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교수들의 상당수는 국가 운영과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따질 경험과 판단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며 "정권 초기에 내놓는 새 정책 중 일부가 서투름 때문에 좌초하면 개혁 자체가 엉망이 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얼마 전 경제분과 회의에선 정책의 '현실성'을 둘러싼 논란으로 회의가 자정을 넘겼고, 일부 관료는 회의장 문을 박차고 퇴장하는 일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측근 정치인 간 갈등=지난 27일 김한길 당선자 기획특보의 기득권 포기 선언은 권력 갈등의 또 다른 사례다.

청와대 정책실장 후보로 거론되던 金특보는 갑자기 17대 지역구 출마를 선언했다. 최근 盧당선자는 金특보를 만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왜 자꾸 金특보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 주변에선 金특보를 밀어내려는 측근 정치인들의 견제가 극에 달했다고 말한다.

인수위 일각에선 문희상(文喜相)비서실장 내정자나 신계륜(申溪輪)당선자 인사특보와의 갈등설이 흘러나왔다. "文실장 내정자로선 정치인 출신의 金특보가 청와대 투톱의 한 축인 정책실장을 맡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거나 "申특보가 金특보를 견제하고 있다"는 얘기들이다. 文내정자와 申특보도 인사와 청와대 직제개편 등을 놓고 서로 다르게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동요하는 인수위원들=국민참여수석 발탁이 유력시됐던 인수위 이종오(李鐘旿)국민참여센터 본부장 대신 박주현(朴珠賢)변호사가 내정된 것을 놓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李본부장은 한때 朴변호사의 수석 내정에 대해 반박 기자회견까지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李본부장에겐 盧당선자 지지교수 그룹인 '개혁과 통합을 위한 교수모임'의 대표라는 상징성이 있다. 한 인수위 고위 관계자는 "교수들을 인수위에 많이 불러놓고 청와대 인사에서 배제하는 것은 자칫 인수위 활동의 마비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교수들의 불만이 쌓여 가자 盧당선자 측은 청와대 인사 시기를 미루기로 했다. "2월 중순 조각(組閣)내용을 발표할 때 함께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는 것이다.

◇경호팀의 '왕따' 민간인=盧당선자 경호팀의 유일한 민간인인 한명선(52)씨는 지난 27일부터 '휴가 아닌 휴가'를 떠났다. 후보 시절인 지난해 11월 농민들이 盧당선자에게 던진 돌멩이와 달걀을 온몸을 던져 막아냈던 주인공이다. 盧당선자는 대선 직후 경호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방문한 청와대 경호실 관계자들에게 "韓팀장과 상의하라"며 전폭적 신임을 보였다.

민간인으로는 유일하게 경호팀에 남아 있던 韓씨는 기존 청와대 경호실팀과의 불화에 시달렸고, 결국 盧당선자가 비서를 시켜 "어려움을 잘 안다. 2월 중순까지만 휴가를 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청와대 경호팀이 의도적으로 韓씨를 소외시켰다는 후문이다.

서승욱 기자 <sswo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