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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골칫거리|화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동남「아시아」여러 나라에서 화교에 대한 본토인의 반발은 「배타적」인 성격보다 높은 차원의 것. 이는 화교들에 의한 경제권의 독점에서 비롯하는 것인데 「필리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인구의 1% 차지>
금년 1월 하순께 「필리핀」국립대학교 학생들을 선두로 많은 군중들은 「필리핀」국회 의사당 앞에서 『불법 거주 화교들은 돌아가라』고 「데모」를 벌였는데 이는 본토인과 화교들의 고질적인 갈등을 드러낸 것이다. 현재 「필리핀」 전국에 퍼져있는 화교인구는 약 30만 명으로 「필리핀」전국 인구의 1%에 지나지 않지만 「필리핀」경제활동에 주축 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필리핀」방직공업의 약 50%가 화교자본에 의한 것인데 대표적인 것이 「유니버설·텍스타일」이다.

<생산분야에 투자>
이들 화교들은 상업 특히 일용품 소매업을 거의 전담하여 「필리핀」배급조직을 독점하여 왔기에 「필리핀」정부는 54년 「소매업 국민화법」을 마련, 64년 6월 19일 시행하자 이에 가장 타격을 받은 것은 화교들. 그래서 이들은 제조업 분야로 자본투자의 방향을 전환시키고 있다. 「필리핀」은 자유 중국과 47년부터 우호조약을 맺고 있는데 중국 본토가 공산화하자 이곳 화교 사회에 공산분자의 침투를 막기 위해 「필리핀」정부는 화교계통 학교들의 교과 과목 배정은 「필리핀」 문교부 지시에 따르도록 하고 「마닐라」시에 있는 「차이나타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한자 상호도 영문이나 「타갈로그」어로 변경하도록 여러 번 지시했지만 화교들은 그들 고유의 전통적인 중국 사회를 이곳 남방 「필리핀」에서도 만들려고 고집하고 있다.

<「꼬리보」조롱 받고>
이들 화교들은 일찍이 「스페인」인들이 「필리핀」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조용히 중국 대륙에서 건너와 상업에 종사하면서 살았다고 하며 그 뒤 「스페인」식민지 시대엔 여러 번 대량학살의 고난을 겪기도 했다. 결국 「스페인」인들은 이들에게 특정구역을 정해주어 그 안에서 생업을 유지하게 했는데 이곳이 현재 「마닐라」시에 있는 「차이나타운」(비 논도 지역)의 근원이다.
이곳에서 몇 대를 지내온 화교들은 거의가 「가톨릭」신자들인데 이것은 「스페인」식민 통치를 견디어내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되며 「마닐라」시의 명물의 하나인 「화교묘지」에 가보면 약간 「가톨릭」교와 타협적이긴 하나 화교 고유의 문화를 간직한 채 이색적인 정취를 풍기고 있다.
「필리핀」은 「스페인」과 미국의 통치를 거치는 동안 서구화되어 온 것은 사실이나 화교들의 영향도 적지 않아 이름·지명·풍속 등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필리핀」 본토인들은 화교들에 대해 간혹 격멸적인 어조로 「인칙까지」(때국놈이니까)「꼬리보」)(구두쇠)라고 놀리나 화교들은 묵묵히 그들의 경제권을 확대해 가고 있다.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이건 마찬가지겠지만 「필리핀」에서도 어느 행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이 문제는 「두통거리」로 부닥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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