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문 선임기자
아파트는 한국 경제가 성장할 때는 말뚝만 꽂으면 불티나게 팔렸다. 소비자도 당첨되면 한몫 잡았다. 손해 보는 이가 아무도 없었고, 자산을 불리는 데는 최고였다. 그런 아파트가 몇 년 전부터 애물단지가 됐다. 집을 팔아도 대출을 못 갚는 하우스푸어까지 등장했다. 수차례 대책을 내놔도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달 초에는 1가구 1주택자의 아파트를 사면 양도세를 면제한다는 과감한 정책까지 나왔다. 집 한 채 소유자의 부담을 덜려는 의도에서다.
집 한 채 부담은 세금만이 아니다. 더 괴로운 게 재산 건강보험료다. 직장이 없는데 1억원짜리 아파트 한 채 있으면 10만원이 넘는 재산 건보료를 내야 한다. 소득은 없고 집 한 채만 있는 지역건보 가입자가 70만 가구가 넘는다. 노인만 13만 가구다. 집을 세내 수입이 생기면 건보료를 내는 게 당연하다. 내가 사는 집에다 건보료를 물리니 환장할 노릇이다. ‘소득 있는 곳에 보험료 있다’는 사회보험의 원리가 통하지 않는다. 세금이야 1년에 두 차례만 내면 되지만 건보료 고지서는 매달 나온다. 속이 썩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다. 지난해 초 인천의 한 건보공단 지사에 갔더니 노인이 오전 내내 하소연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쓰러질 듯한 5000만원짜리 집 한 채에 사는 80대 할머니에게 6만원이 넘는 재산 건보료를 강요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이 정도면 집이, 아파트가 재산이 아니라 ‘웬수’에 가깝다.
재산 건보료는 한국·일본에만 있다. 우리가 제도를 배워 온 일본이지만 우리와 사뭇 다르다. 재산 건보료 비중을 줄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우리의 지역건보) 가입자 건보료의 10%(우리는 48%)밖에 안 된다. 서울대 김진현(간호학) 교수는 4일 토론회에서 “소득(flow)이 없는 상태에서 재산(stock)만 있는 경우 재산을 처분해 보험료를 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아파트를 살 때 돈을 빌렸으면 그만큼 빼고 건보료를 물리는 상식은 온데간데없다.
내년 7월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기초연금이 시행되면 여기저기서 ‘아파트 불만’이 터져 나올 거다. 소득 하위 70%는 월 14만~20만원, 소득 상위 30%는 4만~10만원의 기초연금을 받는데, 어느 그룹에 속할지 따질 때 재산이 중요한 잣대가 된다. 아파트 공시가격에서 1억800만원(기본공제)을 뺀 금액의 5%를 연 소득으로 잡는다. 대도시에 4억원짜리 아파트 한 채가 있으면 연 1500만원(월 125만원) 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환산한다(소득인정액 제도). 현금 소득이 없는데도 소득 상위 30%가 돼 기초연금이 적어진다. 중증장애인에게 지급하는 장애인연금도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기초수급자·한부모가족지원·임대주택 등 100여 가지 복지수당이나 서비스도 재산을 따진다. 기초연금보다 기준이 강하다. 재산에서 5400만원(기본공제)을 뺀 금액의 12.5%를 연 소득으로 잡는다. 노인돌봄종합서비스·장애아동재활치료 등 주거용 재산을 엄격히 따지지 않아도 될 것들도 상당히 많다.
몇 년 전 호주 시드니의 센터링크(원스톱 복지센터)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같이 출장 간 사회복지사들이 복지대상자를 선별하기 위한 소득·재산조사(민즈테스트) 방법을 물었다. 센터링크 간부는 “주거용 집 한 채는 면제다. 크든 작든, 싸든 비싸든 관계없다”고 했다. 30여 명 복지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본인이 사는 한 채의 아파트를 의식주(衣食住)의 필수 재화로 볼 수는 없을까. 호주처럼 주거용 집 한 채를 단번에 뺄 수는 없을 것이다. 급한 것부터 손을 대자. 0순위는 재산 건보료다. 일정액 이하의 재산부터 면제하거나 기본공제를 도입하거나 방법은 있다. 물론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률(45%)을 높이려는 노력이 배가돼야 한다.
기초연금을 비롯한 나머지는 재산 기준을 선별적으로 완화하면 된다. 독일처럼 복지를 먼저 제공하고 대상자가 사망하면 그 집을 팔아서 충당할 수도 있다. ‘박근혜 복지’를 확대하는 것도 좋지만 손톱 밑의 가시부터 뽑아야 체감도가 올라간다. 그러기 위해서 ‘내 집 한 채’를 다시 생각해 보자.
신성식 사회부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