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 주식 자금 대이동, 한국은‘열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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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는데 국내 주식형 펀드 시장에서는 아직 봄 기운 찾기가 어렵다. 투자 날씨가 한창 추울 때 몸을 숨겼던 안전자산 채권에서 자금이 빠져나올 기색이 없다. 성과로 보나 자금 이동으로 보나, 올 1분기 펀드 시장은 지난해 4분기의 연장선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올 1분기 펀드 수익률은 국내 채권혼합형과 채권형이 각각 1.55%, 1.53%를 기록해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0.62%)이나 해외 주식형(-0.71%)을 압도했다. 연초에는 올해 자금이 안전자산인 채권에서 빠져나와 위험자산 주식으로 옮겨 가는 흐름이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자산시장의 흐름은 달랐다. 바닥까지 내려갔다던 금리(채권 값 상승)가 지하실을 뚫고 더 내려가 채권시장은 유례없는 강세장이 지속됐고 채권 투자자는 돈을 벌었다.

 이는 세계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해외에서는 ‘그레이트 로테이션’(Great Rotation, 글로벌 투자자금이 채권에서 주식으로 대거 옮겨 가는 현상)이라는 말이 드물지 않게 나올 만큼 위험자산 선호가 높아지는 추세다. 2일 미국 다우존스 지수(1만4662.01)와 S&P500 지수(1570.25)가 나란히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받치는 중앙은행의 ‘돈 폭탄’ 효과로 5일 닛케이225 지수가 장중 4년7개월 만에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반면 5일 코스피 지수는 1927까지 내려앉으며 연중 최저로 떨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분기 국내주식형 펀드에서는 약 2조5100억원, 해외주식형 펀드에서는 약 8500억원이 빠져나갔다. 반면 국내채권 펀드로는 3600억원, 해외채권 펀드로는 1조4500억원이 들어갔다.

 1분기 국내 주식형 펀드 평균 수익률은 0.62%였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0.39%)에 비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배성진 현대증권 연구위원은 “올 1분기는 코스피지수가 박스권에 갇혀 게걸음을 했지만 일부 개별 종목이 강세를 나타내며 이를 잘 골라낸 국내 주식형펀드가 양호한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개별 펀드로는 ‘동부바이오헬스케어’가 1분기 수익률 14.86%로 1위를 기록했다. 이어 ‘KB배당포커스’(12.54%), ‘한국밸류10년투자 어린이’(10.56%), ‘ING중국내수수혜국내’(10.13%) 등이 수익률 상위에 올라왔다.

펀드매니저가 적극적으로 종목을 고르는 ‘액티브’ 펀드가 단순히 지수 등락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인덱스’ 펀드를 이긴 것도 눈길을 끈다. 중소형주가 대형주보다 강세를 보이면서 적극적으로 종목을 고를 수 있는 펀드가 유리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해외에서는 일본의 임대 부동산에 투자하는 일본 리츠 펀드 수익률(39.14%)이 제일 높았다. 그 밖에 1분기 주가가 급등한 특정 국가 또는 특정 업종에 집중 투자한 펀드가 수익이 좋았다. 동남아 주식펀드(12.81%), 일본 주식펀드(18.08%), 해외 헬스케어 업종 주식펀드(15.42%) 등이다.

 북핵 위험과 엔저 영향으로 국내 주식펀드의 고전은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코스피 지수가 1920까지 내려간 만큼 펀드로 자금이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

최근 한국 주식형 펀드는 코스피지수 1950 이하에서 자금이 들어오고, 2010을 넘으면 환매가 되는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투자자들이 방망이를 짧게 쥐고 ‘저가 매수, 고가 매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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