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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와 법질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종반전에 들어선 대통령 선거 운동은 공화·신민 양당이 대 도시 유세를 하는데 치열한 청중동원 경쟁을 벌이고 있음을 그 특징으로 한다. 최근 수일 내 서울·부산·대구등 대도시에 있어서 양당이 각각 유세를 했었는데, 한 강연 장소에 모여든 청중 수는 20∼30만을 헤아려 청중수 많기로는 세계적인 기록에 육박해 가고 있다. 이처럼 청중수가 많다는 것은 국민의 정치적 관심이 높다는 증좌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매스콤」이 비교적 높이 발달한 사회에 있어서 선거 운동의 초점을 유세 동원에 두는 것이 과연 건전한 형상인가 하는데 대해 의문이 있다. 또 청중을 동원하는 수법이 위법 투성 이라는데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선거강연이란 입후보자나 정당 간부들이 유권대중과 직접 접촉의 기회를 가져 자기네들의 정치적인 포부를 전달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직접 접촉을 하지 않고 「매스·매디어」를 통한 간접 접촉의 방법을 가지고서도 정치상의 견해나 주장을 전달할 수 있는 시대상황의 성립은 선거 운동에 있어서 유세가 차지하는 비중을 현저하게 줄여 놓았다. 이 까닭으로 「매스콤」이 발달하고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이 높은 사회일수록 선거 유세에 참가하는 청중 수는 상대적으로 감소해 가는 경향에 있는 것이요, 선거 강연에 수십만의 청중이 운집한다는 것은 결코 자랑스러운 현상이 못된다.
우리 사회에서 정당유세 수십만의 청중이 운집한다는 것은 국민의 정치적인 열광 도를 나타낸 다기보다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 실업자나 한가한 국민이 많으며 또 정권투쟁의 주역인 정당들이 상기한 시대상황의 성립을 인식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방식에 따라 선거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분명히 말해 두고 싶은 것은 유세에 참가하는 청중수의 다과는 주최 정당의 정치적 시위는 될 망정 결코 그 정당의 인기도를 나타내는 「바로미터」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유동표의 확실한 유인과 정착을 원하는 정당이라면, 청중동원에 주력하고 모인 청중수의 다빈에 일희일우할 것이 아니라, 유권 국민 속에 깊이 파고 들어가 성실한 개별적인 설득으로 표를 끌어 모으도록 해야할 것이다. 선거 유세를 벌이는 정당의 눈에는 청중들이 모두 자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청중 속에는 지지자, 반대자, 냉정한 비판자, 단순한 구경꾼 등 여러 종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직시하는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
지금 양 대 당이 청중을 동원하는 수법을 보면 양당이 서로들 상대방을 헐뜯고 있는 내용 그대로 불법과 위법에 가득 차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비라」살포나 가두 방송으로 청중을 유인하는 것이나, 청중의 편의를 돕기 위해 교통수단을 각별히 제공하고 혹은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먹을 것을 제공하는 따위의 행위는 엄연히 선거법에 저촉되는 행위이다. 그뿐더러 강연이 끝났으면 질서 정연하게 조용히 헤어질 노릇이지 당원을 동원하여 가두「퍼레이드」를 벌인다는 것은 그 위법 여부는 고사코 교통질서를 문란 시키고 시민에게 적지 않은 불편을 주는 점에 있어서 반성해 보아야 할 일인 것이다.
집회에 대한 원천적인 간섭이 자행되었다고 하면 이에 항거하는 의미에서도 집회를 강행하고, 가두 시위를 벌이는 것이 정치적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아니한 경우에 있어서는 법질서의 일방적 파괴는 오히려 정치적으로 역효과를 자아낸다. 불법·위법을 자행해서라도 청중을 많이 모아놓고 그렇게 함으로써 억지로 선거 「붐」을 조성하여 보려는 낡은 수법은 분명히 청산해야 될 단계에 이르지 않았을까 공화·신민 양당은 어디까지나 법질서를 존중하고 시민의 이익을 희생치 않으면서 마지막 결전을 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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