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살기보다 다 잘살기 위하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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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호 26면

저자: 주철환 출판사: 중앙m&b 가격: 1만3500원

지금껏 10권 넘는 책을 내고 현재 일간지에 칼럼을 쓰고 있는 주철환 JTBC 대PD. 그의 글은 쿨하고 솔직하다. 새로 나온 책도 다르지 않다. 물론 이것이 그의 글이 ‘호감형’인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이번 책에 추천사를 쓴 배우 김혜자씨의 말처럼 그의 글은 진솔하고 담백하다. 가르치려 하지 않고 잘난 척하려 하지 않아 일단 점수를 주고 싶어진다. 요새 너무 흔해져 인플레가 생긴 단어 중 하나인 ‘희망’을 얘기하는데 그게 공허하지 않다는 점이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따뜻한 시각의 글이 가지는 강점일 것이다.

『더 좋은 날들은 지금부터다』

“난 이렇게 살다 죽을게 / 넌 그렇게 살다 죽으렴.” 언젠가 그가 썼다는 시다. 이 시의 제목을 ‘냉소’나 ‘비아냥’으로 붙이지 않고 '존중'으로 했다는 데서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지 드러난다. 존중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렇게 하니 조금씩 더 행복해지더라, 조금씩 더 마음이 밝아지더라는 일종의 수기다. 그는 국어교사와 스타 PD, 대학교수, 방송사 사장을 거쳐 대PD까지 남들은 한 번 제대로 하기도 힘든 일을 섭렵한 유명인이다. 유명인의 수기는 자기자랑으로 흐르기 일쑤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을 때 그런 의심은 잠시 제쳐놔도 좋다. ‘더다이즘’이란 표현은 저자가 왜 이런 글을 쓰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다.

‘더’ 잘 사는 것도 좋지만 ‘다’ 잘 사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단다. 남보다, 과거보다 더 잘 사는 것보다 다 같이 잘 사는 길을 고민하다 보니 행복과 희망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졌으리라 짐작이 된다.

책 제목이 그래서 『더 좋은 날들은 지금부터다』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The best is yet to come)’에서 힌트를 얻은 듯싶다. 사람들이 가장 좋은 계절을 물으면 “다음 계절”이라고 대답한다는 그의 글을 읽고 나면 새삼스레 눈길은 부제로 향한다. ‘행복 프로듀서 주철환의 산뜻한 인생 관찰기’. 저자의 의도는 어떨지 모르지만 방점은 ‘행복’보다는 ‘산뜻’에 찍힌다. 산뜻하게 자신의 30여 년 인생 역정을 풀어놔서다.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사투리 쓰는 결손가정의 아이” 얘기로 책은 시작하지만 질척거리지 않는다.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고모집에 입양된 소년. 그가 “귀염 받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래야 산다”는 깨우침을 얻었다는 대목에선 일순 마음이 짠해지기도 하지만, ‘나를 키운 건 팔할이 결핍’ 식의 분투기를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또 하나 강렬하게 와닿는 건 인생을 관찰한 결과물을 후배 세대와 공유하고 싶다는 저자의 욕망이다. 아들 친구들을 정기적으로 식사와 콘서트에 초대하며 대화를 나누는 데서 알 수 있듯 후배 세대에 도움 되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애정과 열정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위로와 치유, 독설 등 요새 서점가를 휩쓰는 책들의 키워드 중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지만 충분히 인상적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무조건적 긍정이 아닌 긍정, 대책 없는 희망이 아닌 희망, 철 없는 밝음이 아닌 밝음쯤 될까. “북극성을 바라보며 늘 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사람은 북극성 가까이에서 행복한 죽음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는 개인적으로 기억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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