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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 갈아타기’ 언제까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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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우리나라 사람들 좀 너무한 것 같아요.”

며칠 전 편집국 후배가 투덜거렸다. 최근 석사 논문 표절 의혹에 휩싸인 스타 강사 김미경씨 얘기였다.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톱10 순위에서 김씨의 책 『드림 온』이 순식간에 밀렸다는 것이다. 인터넷 서점 집계에선 더하다. 교보문고 순위를 봤다. 출간 이후 10주 가까이 톱10 안에 들어있던 『드림 온』은 한 주 만에 25계단이나 떨어졌다. 『언니의 독설』은 42위나 떨어진 56위였다. 예스24도 다르지 않았다. 여러 오프라인 대형서점 집계를 합친 주간 베스트셀러 순위에선 여전히 상위권에 있었지만 판매는 급속하게 줄고 있었다.

후배의 볼멘소리는 이어졌다. “’국민 멘토(mentor)’라고 떠받들 땐 언제고… 해명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하는 태도가 맘에 안 들어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반응은 더 격렬하다.

동의한다. 그런 의혹에도 불구하고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책을 사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물론 아니다. 책 판매 급감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야간대학원 분위기 알지 않느냐”는 김씨의 해명에 일리가 있으니 ‘정상 참작’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꿈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의 언어”라고 부르짖던 사람이 그랬으니 배신감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주목하고 싶은 건 ‘멘토 열풍’이 하루 아침에 ‘멘토 난타’로 바뀌는 과정과 속도다. 그 빠른 속도에 멀미가 날 것 같다. 대중의 속성이 원래 냄비 같다고 해도 좀 심하다. 찬양에서 비난으로 돌변하는 모습이 집단병리 현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150만 팔로어를 거느리며 한때 ‘트통령(트위터 대통령)’으로 불리던 소설가 이외수씨에 대한 반응도 다르지 않다. 혼외정사로 낳은 아들한테 양육비를 줬네 안 줬네 하는 사생활을 놓고 “가면이 벗겨졌다” “철면피”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과연 가면이 벗겨진 걸까. 그 가면을 이씨가 스스로 썼을까. 멘토라는 건 대중이 만든 허상 아니었을까. 소위 멘토들에게 ‘국민강사’나 ‘트통령’이란 이름을 붙이며 열광한 것도 대중이요, 트위터에 올린 140자 글을 묶어 만든 책을 베스트셀러에 등극시킨 것도 대중이니 말이다. 냉정히 따지면 “제가 인생에 도움이 될 말을 해드릴 테니 제 책도 사주시고 부디 절 존경해주세요”라고 멘토들이 먼저 부탁한 건 아니란 얘기다.

최근 1~2년 새 우리 사회엔 멘토 열풍이 유난했다. 안철수 예비후보를 비롯해 김난도 서울대 교수, 혜민 스님과 법륜 스님 등 다양한 이들이 멘토로 추앙받으며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랐다. 사람들은 앞다퉈 책을 샀고 강연을 들었으며 그들의 조언을 전파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조언자를 찾겠다는 걸 뭐랄 수는 없다. 하지만 멘토는 아이돌과 다르다. 한순간에 띄웠다가 실망하면 다른 멘토로 대출상품 갈아타듯 몰려가는 존재가 아니란 얘기다. 지금 한국 사회가 멘토를 대하는 모습은 팬덤과 흡사하다.

아이돌에 열광했다 사그라지듯 멘토를 대했을 때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현실 외면이다. 그러는 사이, 멘토에 절박하게 매달리도록 만들었던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성찰과 적극적인 해결을 도외시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무비판적 ‘멘토 갈아타기’는 멘토들의 방법론인 힐링과 위로, 독설을 일회성으로 소비하는 행위로 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오히려 나는 속된 말로 좀 꼰대 같더라도 부모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게 유익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냉소적으로 보자면 결국 지금 멘토-멘티의 메커니즘은 성공의 경험을 팔고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증평 촌년’이 회당 3000만원의 톱 강사가 되는 신화 말이다. 이런 거라면 ‘한강의 기적’을 겪은 부모 세대의 증언이 더 생생하고 미덥지 않을까. 적어도 부모들은 자식들을 상대로 자신의 경험을 팔아 돈을 벌진 않을 테니.

글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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