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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한 식육공장 풍경. 고기에 파리가 새까맣게 붙어 있다. 피 땀흘리는 직공들. 지하실 작업장은 습기로 숨이 막힌다. 손 씻을 물이 따로 없어 「소시지」에 넣을 물에 손을 씻는다.
외국에 수출한 통조림은 방부가 제대로 안되어 썩어 돌아온다. 이 썩은 고기를 다시 원료 속에 섞어 넣는다. 여기서 「양질」의 고기 「소시지」가 전국으로 공급된다-. 이것은 우리나라 얘기가 아니다. 「업튼·싱클레어」의 소설 「정글」에 나타나는 「시카고」의 「다함」회사 도살장이다.
당시의 대통령 「디어도·루스벨트」는 아침을 먹으며 책을 읽는 습관이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이 책을 집어든 그는 격노했다. 식탁의 「소시지」를 창 밖으로 내던지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의회는 당장 「사실조사위원회」를 구성, 「식품법」을 제정했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기어이 부정식품의 뿌리를 뽑고 말았다. 1906년의 일이다.
우리는 「롱갈리트」 「살인주스」 그리고 이번에는 먹으면 하반신이 마비되는 튀김기름까지 맞이하게 됐다. 식용튀김기름에 경유에서 재생한 화학유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국립보건원의 감정결과를 보기 전에는 단정할 수 없으나, 튀김을 즐기는 사람은 갑자기 다리에서 맥이 빠져나갈 소식이다.
대체 이런 일이 언제나 사라질까. 수사에 애로가 있을 줄 안다. 국민이 살인식품을 먹고 죽거나 병신이 돼도 좋다고 할 정치인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정치는 결과만으로 판정되는 냉혹한 세계다. 국민학교 아동이 「살인주스」 안 사먹기 운동을 벌였다는 사실은 곧 정치인의 실격판정을 뜻한다. 「디어도·루스벨트」의 박력과 용기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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