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무표정한 얼굴을 보라 미래가 얼마나 불안하기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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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짝-패, 2002, 101×127㎝. [사진가 변순철]

익숙한 장면은 아니다. 동양인 남자와 백인 여자, 그리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소녀, 혹은 백인 여성을 번쩍 들어 안고있는 흑인 남성. 다큐멘터리 사진가 변순철(44)씨의 ‘짝-패’ 시리즈다. 뉴욕에서 머물던 1996∼98년 찍은 혼혈 커플들의 초상이다.

 ‘순혈의 나라’ 출신 사진가는 다문화 사회에서 벌어지는 인종간 결합의 메커니즘이 그렇게 생경했던 걸까. 카메라 앞에 자기집 욕실, 피부색이 숨김없이 대조되는 나신까지 드러낸 인물들은 한결같이 무표정하다. 그들의 무표정은 거울처럼 사진가의 마음을 비춘다. “절박함과 불확실한 미래의 외로움, 고독함이 사진 속 대상들에게 투영되면서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던 시기다.”

 20대에 이미 죽음을 경험한 그에게 외로움은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대학 1학년 한 학기를 마치고 바로 입대했다. 보초를 서던 중 막사에서 불이 났다. 주저앉은 막사에 깔렸고 몸엔 불이 붙었다. “평생 사람 구실 못할 수도 있다”는 진단에 막막했던 그때, 형이 가져다 준 사진집 몇 권이 구원이 됐다. 사진가가 되리라, 퇴원 후 뉴욕으로 날아갔다.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2005년 귀국한 변씨가 새로 시작한 것은 ‘전국 노래자랑’ 시리즈. 변씨는 일요일 낮 TV에 나와 끼를 발산하는 필부필부(匹夫匹婦)에서 한국인의 모습을 읽으려 했다. 한껏 멋 부린 촌로들은 낯선 동시에 ‘살아있다’ 싶었다. 뭔가 분출하고 싶은 욕망이 그대로 베어 나왔다. 독립기획자 송수정씨는 “‘짝-패’가 그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온전히 내보이면서 심리적 정체성에 대한 교감의 틀을 마련했다면, ‘전국 노래자랑’은 사생활 밖에서 분출되는 욕망의 사회적 단면을 그렸다”고 평했다.

 변씨가 최근 두 권의 사진집 『변순철, 1996 to the present』 『순(soon)』을 출간했다. 이를 계기로 서울 원서동 그리고(GRIGO) 갤러리에서 다음 달 7일까지 전시를 연다. 070-7570-3760.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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