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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파수 영토 확장 … ICT 외교가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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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양유석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원장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의식주와 공기·물이라면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석유다. 석유 없이는 공장도, 자동차도, 전기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석유 없는 미국은 종이호랑이’라는 비유가 있을 정도니 석유는 한 국가의 생명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바일이 상용화된 스마트 시대에 석유만큼이나 중요해진 자원이 있다. 바로 ‘전파(주파수)’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활용하고 TV나 라디오를 듣는 것 외에 의료·제조·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전파는 생활 속 핵심 자원이 됐다. 1903년 무선전신기가 처음 발명됐을 당시만 해도 전파가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리라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활용도가 높아지고 수요가 폭증하면서 전파 부족현상도 심각해지고 있다. 2011년 처음 실시된 주파수 경매에서 특정 대역의 주파수 하나가 9950억원이란 거액에 낙찰된 것은 전파의 가치가 급등하고 있음을 입증한 사례였다.

 이처럼 부족한 전파 개발을 위해 각국 정부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모바일 광개토플랜’을 수립해 주파수 영토를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해 오고 있다. ‘사는 땅은 좁지만 주파수 영토만큼은 가장 넓게 확보한다’는 목표하에 국제표준에 맞는 주파수를 효율적으로 발굴, 공급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주파수 영토 확장을 위해서는 연구개발(R&D) 투자와 함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을 중심으로 한 정보통신기술(ICT) 외교가 필수적이다. 유엔 산하 기구인 ITU는 스마트 시대가 되면서 그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193개 회원국을 거느린 매머드 기구로서 유·무선통신의 이용에 관한 국제질서를 만들고 전파의 국제적 배분과 혼선 방지를 위한 조정자 역할도 하고 있어서다. 특히 ITU는 최근 전기통신의 세계 표준화 작업을 진행하면서 한층 더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역할과 권한이 막강해지고 있는 ITU에서도 최고 의사결정체는 단연 ‘ITU 전권회의’다. 전체 회원국이 참여한 가운데 4년마다 열리는 ICT계의 올림픽이다. 인터넷, 정보 보호, 정보 격차 해소 등 글로벌 ICT 현안에 대한 결정이 여기서 이뤄진다. 우리가 이 회의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차기 전권회의가 2014년 부산에서 개최되기 때문이다. 부산회의는 94년 일본 교토회의 이후 20년 만에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의미 있는 행사다. 각국 대표단이 한국을 찾아 3주간 머물기 때문에 경제적 효과는 물론 한류 문화와 ICT 강국으로서 홍보효과도 매우 클 전망이다.

 이처럼 중요한 행사의 성공을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수적이다.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뿐 아니라 범정부 차원의 지원과 협력이 중요하다. 이제 막 항해를 시작한 박근혜호에 부산 ITU 전권회의는 ICT를 지렛대로 삼아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이룰 절호의 기회다. 지금부터라도 부산 회의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할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ICT계의 중심 국가로 만들 기회가 우리 앞에 와 있다.

양유석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