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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도심으로 들어간 자동차 공장

중앙일보

입력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 한가운데에 자동차 공장이 들어서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폴크스바겐(VW)社가 1억6천2백만달러를 들여 완공한 ‘유리 공장’은 독일 작센州 드레스덴의 한복판에 세워졌다.

이는 중공업과 도시문화를 성공적으로 융합시킨 최초의 사례였다. 공장지역을 주거지나 공원에서 격리시키던 지난 1백년간의 도시계획 방식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2월말 고급 모델 ‘파에톤’을 출시하는 VW은 드레스덴의 예술적 이미지를 이용해 상류층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드레스덴은 이 실험에 가장 적합한 도시다. 도시 중심부에는 2차대전 때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하루 빨리 개발이 필요했다. 영국 왕립건축학회의 마이클 맨서 前 회장은 이것이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먼지나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고도 공장이 운영될 수 있다. 주택가와 공장을 떼어놓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드레스덴 시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1998년 이 계획이 처음 발표됐을 때 주민 1만7천명이 반대청원을 제출했다. 그들은 드레스덴의 중심부가 화려한 바로크풍으로 서서히 회복되기를 바란다.

1945년 연합군의 공습 중에 궁전 지하실에 대피했던 사람들은 폭탄이 떨어지지 않아도 그곳의 화려함에 질식돼 죽을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동독이 소련의 지배를 받으면서 드레스덴 중심부에는 흉한 몰골의 콘크리트 건물들이 솟아올랐다.

드레스덴 공장 설계자 귄터 헨은 자동차 공장이 들어서면 도시 외관이 더 손상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헨은 드레스덴이 오래전부터 바로크 문화뿐 아니라 공업 중심지로도 유명한 곳임을 강조했다.

“이 공장이 도시와 잘 조화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소음도 없고 외관도 아름다운 공장을 짓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성공적인 듯하다. 헨은 허름한 전시장이 차지하고 있던 황무지에 공장을 지으면서 이것이 드레스덴의 역사·문화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했다.

사실 작센州는 20세기 초반 자동차 생산의 중심지였다. 공장 주변의 해자는 드레스덴 구시가지를 둘러싼 해자를 본뜬 것이다. 또한 공장은 주변의 오래된 건물들과 잘 어울리도록 투명한 유리로 지어졌다. 헨은 이렇게 설명했다.

“건물 안을 들여다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건물을 통해 반대쪽의 주택가도 보인다. 작업장과 식당도 서로 잘 조화를 이룬다.”

자동차 조립라인은 공장 건물 어디에서든 보인다. VW은 공장이 오는 3월 일반에 공개되면 주민들이 공장을 즐겨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곳의 홀에서 콘서트나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고, 레스토랑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VW이 공장을 완전히 공개하려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VW은 이로써 자동차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 한다. 맥주공장이나 초콜릿 공장은 오래전부터 방문객을 받았지만, 중공업은 뒤늦게야 작업장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했다.

영국 셰필드의 매그너 센터나 VW의 볼프스부르크 공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매그너 센터는 과거의 제철공장을 과학 어드벤처 공원으로 바꾸었고, VW의 볼프스부르크 공장은 테마파크와 연결돼 있다. 이곳은 모두 생산 과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대중의 욕구를 위해 마련됐다.

헨은 “소비자들은 음식·자동차·옷·신발 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한다. 제조과정을 볼 때 제품을 가장 신뢰할 수 있다”고 말했다.

VW은 이 조류를 적극 활용해 고객들이 자동차 조립의 전공정을 참관할 수 있게 했다. 방문객은 우선 2층의 홀로 들어간다. 소파와 페르시아 양탄자가 갖춰진 이 홀에서는 바깥의 정원과 생산라인을 내려다볼 수 있다. 소비자들은 음료수를 마시며 자동차 색상, 내부 인테리어 등을 고르며 새로운 자동차 모델을 직접 디자인해볼 수 있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이나 CD 플레이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배운다.

자동차가 생산라인에서 조립되는 데 모두 36시간이 걸린다. 고객은 자기 자동차가 어디까지 조립됐는지 점검해볼 수도 있다. 기다리는 동안 극장이나 전시장을 들를 수도 있다.

헨은 “자동차를 사는 것은 이성보다 감성적인 행동이다. 우리는 이 감성적인 면에 부합하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환경보호주의자들도 드레스덴의 VW 공장에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이 공장에는 연기를 내뿜는 굴뚝이나 도로를 막는 운송 트럭이 없다. 자재는 근처에서 전차로 실어온다. 건물을 한바퀴 감싸고 있는 조립라인에는 고급 마루가 깔려 있으며 은은한 조명이 비친다. 지게차나 중장비는 없다. 모든 조립은 손으로 이뤄진다.

마룻바닥 위에서 일하는 공장 직원들은 작업장의 장인처럼 보인다. 유리벽으로 만들어진 사무실은 생산라인을 향해 문이 열려 있다.

헨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렇게 하면 조립라인의 직원들이 일하기가 더 좋다. 사무실에 있는 사람이 생산라인의 상황을 직접 볼 수 있다. 공장 근로자들도 사무실에 드나들 수 있다.”

지금까지 유리 공장의 성공은 이론적인 것에 불과하다. 벤츠 S-클래스 및 BMW5 시리즈와 경쟁하기 위한 신차 파에톤의 생산은 2월말 이후에야 시작된다.

어떤 사람들은 유리 공장 디자인의 핵심인 ‘투명함’이 단순한 홍보수단이라고 말한다. 런던 바틀릿 건축학교의 이어인 보든은 “이것은 내부를 보여주려는 의도이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보고 이해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공장을 둘러보고 자기가 구입할 자동차를 볼 수는 있지만, 품질과 디자인 결정과정을 볼 수는 있는가?”

헨은 새 공장 덕분에 VW뿐만 아니라 드레스덴도 활기를 되찾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파에톤과 유리 공장은 모두 새로운 고객층에 어필하기 위해 설계됐다. 그 새 고객층은 드레스덴의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고, 드레스덴 공장의 인터넷룸에서 고급 보르도 와인을 검색하고, 런던에서 옥스퍼드까지 가상운전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헨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공동체는 잡지나 인터넷에서 만들 수 없다. 우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실제적인 공간을 원했다.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사람들에게는 뿌리내릴 곳이 필요하다.”

Tara Peppe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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