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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중사회·신문·전파「미디어」 - 김규환<IPI 한국위사무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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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중사회의 전달매체>
간부 신문인들의 「세미나」에서 박재란(인기가수)양이 무엇하는 사람이냐고 묻는 이가 있어 만장의 웃음을 자아냈다. 수상, 장관의 이름을 몰랐더라도 그다지 관심거리가 되지 않았을 텐데 바야흐로 현대사회의 「스타·시스템」은 우리나라에도 이룩되어 가고 있다. 대중사회와 「매스코뮤니케이션」과의 관계는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밀접하다. 구미 선진사회에서는 제1차대전 후에 「매스데모크라시」라는 표현이 생겨나고 이것이 다시 산업적 대사회의 개념과 결합되어 현대적 대중사회의 성립을 규정지었다. 특히 제2차대전 중 미국에서 「매스코뮤니케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여론의 연구가 본격화함에 따라 대중사회와 「매스콤」은 현대사회의 가장 특징적인 두 개의 표현내용으로 등장하였다.
대중사회의 특징은 한마디로 다수의 이질적인 그리고 익명의 사회성원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신문·잡지 등의 인쇄 「미디어」 「라디오」 「텔리비」등의 전파「미디어」등이 그와 같은 대규모의 분산된 사람들에 대해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고 교양과 오락 등 대중문화를 전달함으로써 이 산산이 흩어진 원자화된 대중을 어떤 형태로든지 결합시켜서 하나의 의견의 「컨센서스」(합치)를 이룩하겠다는 것이 바로 「매스콤」의 역할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마취 작용하는 역기능>
그러나 한편으로는 처음에 박재란양의 예에서 본바와 같이 「매스콤」은 대중의 정서, 호기심에 영합하고 평균화된 대중심리에 발맞추어 백일몽이나 마취작용을 일으키는 이른바 역기능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회발전과 관련하여 「매스콤」이 수행하는 역할에 관해서 하나의 사회사적인 분수령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매스·미디어」특히 전파「미디어」의 생장이 현저한 5, 6년 전이라고 할 수 있다. 「유네스코」가 과도적 사회에 있어서 기준으로 삼고 있는 「라디오」수신기의 보급율(인구 백명당 5대)을 초과한 것은 이미 6년 전이다. 앞으로 「라디오」 및 「텔리비」는 그 기업성의 확립, 국내생산, 대중의 접촉욕구 등으로 볼 때 그 보급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 기대된다.

<목탁역할은 감소경향>
전통적인 「미디어」인 신문도 이미 인구백명당 70여부를 달성했으나 아직도 「유네스코」의 기준이 10부에 미달이다.
그가 수행한 사회지도적 기능으로 말미암아 신문은 전통적 「미디어」로서 그 영향력이 새로운 「매스·미디어」인 「라디오」나 TV보다 훨씬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앞으로 국가경제의 발전, 사회분화 확대에 따라서 전파「미디어」와 신문의 상호작용적 기능면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 예상된다. 이미 신문의 기능면에 있어서 볼 때 사회 목탁적인 역할이 감소되고 해설적이고 읽을거리 위주의 기사가 늘어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선거때에 보는바와 같이 속보성에 있어서도 신문은 「라디오」에 훨씬 뒤떨어지고 있다.
「퀄리티·페이퍼」(질적 신문)이냐 「포퓰러·페이퍼」(대중지)냐의 성격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개성 없는 「잡지신문」>
오늘날 한국의 신문들이 「라디오」 「텔리비」와 마찬가지로 대중오락 내지는 대중문화의 보급에 치중하는 잡지 적 성격을 지니고 갈 때 「매스콤」의 수취인인 대중에서 볼 때에 「미디어」로서의 개성은 감소 될 것이 분명하다. 물론 신문이 대중지로서 많은 독자를 개척하는 것은 「매스콤」으로서의 순리의 방향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발전도상의 국가에 있어 신문이 아직도 발휘해야 할 사회지도적 역할은 허다하다고 믿는다.

<「속보성」을 뺏긴 신문>
이러한 면에서 우리나라의 신문이 전파「미디어」와 경쟁하면서도 공존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 같은 획일적이고 무성격적인 지면제작의 방향을 재검토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대담하게 「포퓰러·페이퍼」냐 「퀄리티·페이퍼」냐의 양자택일을 고려해도 좋지 않을까.
금년의 「신문의 날」의 「슬로건」은 「알 권리」의 주장이다. 무엇을 어떻게 알 것인가 하는 권리의 행사내용이 문제일 것이다. 전파「미디어」가 이 문제해결에 부적합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발전의 가치관에 입각해서 목적합리성을 추구하는 데에 역시 신문은 대중사회의 「컨센서스」를 이룩하는데 더욱 신뢰성 있는 「미디어」로서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대중사회의 새 「엘리트」>
1954년에 「월터·리프맨」은 「퍼블릭·필로소피」(공중철학)라는 저서를 통해서 자유민주주의의 회생을 위해서 「엘리트」정치의 재흥을 제언했다.
그의 깊은 생각 속에는 대중사회에 대한 뿌리깊은 회의를 품고, 『좋은 사회의 근본원리가 정당「보스」나 압력단체의 대리인이나 「매스콤」의 새로운 「미디어」의 소유자에 양도해서는 안 된다』고 시사하고 대중사회의 새로운 「엘리트」에 기대를 걸었다. 「매스·미디어」의 새로운 분포도 속에서 우리는 한국「매스콤」의 새로운 좌표를 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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