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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근본적 반성|「카르텔」에 의한 발전의 저지 - 신상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해방 후 20여년이 지나는 동안 거의 모든 상품의 생산과 공급이 질과 양에 있어서 장족의 진보를 이루었다. 그러나 유독 신문이라는 상품은 질·양 공히 퇴보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산 증거로서 우선 일간지의 제작지 면수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해방전보다도 지면 줄어>
지금 서울에서 발간되는 일간지는 1주 3일간은 1일 4면, 나머지 3일간은 1일 8면을 내고 있다. 일제말엽 서울에서 발간되던 민족지가 최악의 조건하에서도 1일 8∼10면을 내던 것을 생각하면 양적인 면에서 분명한 퇴보이다.
취재해야 할 「뉴스」의 양이 줄어들고 「뉴스」에 대한 국민의 수요가 감소하였기 때문일까? 천만에. 오늘날 신문에 취재 보도해야될 「뉴스」의 양은 일제 때보다 열 갑절 늘었고 「사회과학적 개념으로서의 세계」의 성립과 공간의 시간적 단축은 「뉴스」에 대한 수요를 늘게만 하고 있다.
국토가 반으로 쪼개져 독자가 줄고 경영면에서 기업으로서의 신문이 성립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인가? 천만에. 현재 남한만의 인구도 해방전 남·북한을 합한 인구와 비등할 뿐 더러 교육의 양적 팽창은 독서인구를 10여배로 급증시켰다. 그뿐더러 산업의 성장과 PR하지 않으면 상품을 팔아먹을 수 없는 시대상황의 성립은 신문의 광고주를 급증케 하고 있다.

<발행 면수 무시한 「10원」>
「라디오」나 TV의 출현과 발달이 기업으로서의 신문발달에 암영을 던져 주고 있기 때문일까? 이 역시 천만의 말씀. 「라디오」나 TV의 발달이 신문발달과 상쇄관계에 들어선다는 논리는 최 선진사회에도 성립되지 않고 있다. 하물며 한국처럼 「라디오」나 TV의 발달이 지지부진한 사회에 있어서 이들 「미디어」 때문에 신문발달이 해를 입고 있다는 논은 도저히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적 퇴보의 요인은 무엇인가? 나는 서슴치 않고 그것이 신문간의 「카르텔」형성이요, 또 이런 「카르텔」형성이 자유경쟁에 의한 진보를 저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현하 한국의 신문은 발행부수에 따라 1부당 제작단가는 서로들 다를 줄 알지만 4면의 지면과 8면의 지면을 교체로 내고 월정구독료를 130원으로 균일 획정한 점 분명히 가격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같은 지면의 신문을 같은 값으로 팔고 있으니 좋은 내용의 신문은 나쁜 내용의 신문보다 더 잘 팔릴 것이요 여기서도 업자간의 경쟁은 벌어진다. 그러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는 조건하의 경쟁이란 흑자도 출혈도 그 범위 내에 국한되는 까닭으로 자유경쟁에 의한 우승열패를 촉구치 못한다. 신문이란 그 상품으로서의 성질로 보아 제작·판매에 있어서 창의성과 개성을 최고로 발휘해야만 비로소 발달할 수 있는 것이다.

<독자에 일방적 손해 강요>
그리고 이번 창의성과 개성의 발휘는 무엇보다도 업자가 자기 나름으로 제작지면 수와 신문 값을 결정할 수 있는 조건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최근 수년래 한국신문에 발견되는 공통한 특징은 보도 논평이 천편일률적이고 신문마다 개성과 특색을 찾아볼 수 없고 또 업계에 자연도태가 정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기본원인이 「카르텔」의 형성유지에 있는 것인데 하물며 그 「카르텔」로 인해 독자가 매일 근소한 지면의 신문밖에 공급 못 받아 「뉴스」를 널리 알 수 있는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는데 이르러서는 「카르텔」이야말로 백해무일리 하다 아니할 수 없다.

<사리위한 자기집착에만>
신문업자간에 「카르텔」이 형성·유지되고 있는 소이는 용지난을 해결하고 과잉경쟁을 억제하자는 데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신문이 국민의 반필수품이 되어 있는 사정 하에서는 용지난은 반드시 국가적으로 해결지어야 할 문제이고, 또 과잉경쟁은 업자가 신문기업인으로서 요구되는 「모럴」을 엄격히 지켜나감으로써 자발적으로 억제해야 할 문제이다. 그렇다면 신문업자들이 「카르텔」을 형성·유지하여 신문의 자유경쟁을 막고 독자에게 손해를 강요해도 좋을 이유는 매우 빈약한 것이다. 만약에 원료난과 과잉경쟁을 이유로 「카르텔」을 형성해도 좋다고 하면 다른 상품 생산업자들도 동업자간에 「카르텔」을 형성·유지해도 좋을 근거는 신문업계보다 훨씬 더 강할 것이다.
다른 상품분야에서 동업자들끼리 「카르텔」을 형성하여 소비대중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한사 반대하는 신문들이 자기네들간은 「카르텔」을 형성·유지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가당착을 범한 것이다. 이런 자가당착이 버젓이 용납되는 까닭은 신문은 자기의 이익을 옹호할 수 있는 일상적인 표현기관을 갖고 있지만 다른 생산업자들은 그런 것을 못 갖고 있다는데 있다. 기업으로서의 신문이 반성해야 할 최대의 과제는 바로 여기 있을 것이다.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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