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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우 속에 차단기 돌파 구명의 20초|「자유」 택한 이 수근 씨의 탈출 전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괴뢰 중앙통신 이수근 부사장의 탈출 순간을 눈으로 보고 나는 눈물이 글썽했다』 이상한 예감 때문에 판문점에 홀로 남았다가 이 모습을 본 유일한 기자인 동양 「라디오」 김 집 기자는 그의 목격담을 이렇게 술회했다.

<우물쭈물 회담 끝내>
22일 제 2백42차 본회의가 예정대로 상오 11시 정각에 시작했으나 회의 내용은 시시했다. 안건도 별것이 아니었다. 상호간에 내용 없는 설전이 오갔다. 하오 4시5분, 회의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유엔」측 기자 인솔 장교가 예고도 없이 기자들에게 『서울로 갑시다』고 통보했다.
이 때는 괴뢰 대표 박 중국이 한창 반미 발언을 하다가 『나도 더 이상 제의할 안건이 없으니 휴회하자』고 제의하는 찰나였다.

<기자들은 미리 보내>
그래서 우리 측 기자 30 여명은 철수를 시작, 나도 녹음기를 메고 나오다가 문득 이상한 감촉이 온몸을 스쳤다. 여태까지 10여 년 동안 판문점 주변을 취재했어도 미군 측의 요청으로 기자들이 철수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돌아가자니까 어딘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우선 회사에 전화로 연락, 하오 4시 10분 전후의 상황을 보고한 다음, 밖으로 나와보니 우리 측 기자용 「버스」 2대가 막 떠나고 있었다.
나는 탈 생각을 않은 채 군사정전위 「유엔」 측 연락장교실 막사로 갔다.

<긴장 감도는 현장>
한국인 직원 몇 명이 앉아 있기에 『회의가 더 계속되겠는가 ?』 라고 물었더니 『좀 계셔 보시오』라 했으며, 이 무렵 전체 분위기가 의외로 긴장해 있었다. 「유엔군」 측 경비 대장 「톰슨」 중령도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본회의장 주변에 나타났다.
괴뢰 경비병들은 회의가 끝날 무렵에 배치되는 정 위치에서 있었으나 「유엔」 측 「치콜렐러」 소장은 공산 측 휴회 제의를 묵살하고 계속 공산 측에 대한 공격 발언을 하고 있었다.

<남쪽에 승용차 대기>
하오 5시 5분, 「치콜렐러」 소장의 마지막 발언이 시작될 무렵, 자유의 집 북쪽에 대기하고 있던 우리 측 대표단의 승용차가 본회의장 「유엔」 측 출입문 앞으로 평상시 보다 좀 빨리 대기했다.

<「자유의 집」서 서성>
이 「세단」은 이날 따라 회의장 「유엔」 측 출입문 바로 앞에 대기하지 않고 평상시와는 달리 남쪽 통로를 향해 앞질러 나가 있었다.
그 당시 공산 측 기자 4, 5 명이 「유엔」 측 대표가 있는 북쪽 유리창 문 앞에 서성거리고 있었으며 이들 속에 이 수근 씨가 끼어 본회의장과 자유의 집을 두리번거리며 서성댔다.
하오 5시 23분 「유엔」 측의 마지막 발언에 대한 중국어 통역이 끝나고 양측 대표가 퇴장하려고 일어서는 순간, 「유엔」 측 영국 대표 「세단」 (USA SG 104)의 본회의장에 면한 뒷문이 열리면서 40세 가량의 괴뢰 기자 1명이 뛰어들었다. 뒤따라 군복 차림의 「유엔」 군 1명이 올라탔다.
이 「세단」 앞자리에는 「톰슨」 중령이 재빨리 탔다. 이 순간 주변에 있던 괴뢰 경비병 1명이 「톰슨」 중령의 오른팔을 잡고 당기며 매달렸다. 이미 자동차는 발동이 걸려 움직이는데...
「톰슨」 중령은 손을 잡은 괴뢰 경비병을 밀어 제치면서 문을 닫고 「치콜렐러」 수석 대표 차를 S자형으로 앞질러 전속력, 일로 남으로 향했다.
괴뢰 경비병들은 『야 !』 하면서 고함을 질러 주변에 있던 괴뢰 경비병 30 여명이 남쪽 통로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집결했다.

<괴뢰 병들 와글와글>
괴뢰 경비대장으로 보이는 한 명이 권총 1발을 하늘로 공포, 발사하자 괴뢰 경비병들은 일제히 「세단」의 뒤를 쫓으며 발사했다. 그러나 이 무렵 「세단」 차는 본회의장 남쪽에 있는 언덕길을 넘어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이 언덕길에 괴뢰 경비병들이 당도했을 때 「세단」 차는 남방 공산 초소 앞 차단대를 돌파, 귀순하기까지의 20초, 극적인 탈출, 순간적인 민완 동작이었다.
그리고 5분 후 뒤쫓던 괴뢰 경비병들은 「닭 쫓던 개」처럼 힘없이 되돌아 왔는데 이 때 나는 왈칵 겁에 질렸다. 혹시 이수근 씨 대신 나를 납치하지나 않을까? 나를 인질로 잡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신변 보호 급히 요청>
공포에 못 이겨 한국군 연락 장교에게 신변 보호를 요청, 「유엔」군 헌병 3명의 보호를 받았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동안 「치콜렐러」 소장을 비롯, 「유엔」 측 대표들은 「유엔」 연락장교실 정문 앞에서 시종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제일 통쾌한 순간>
정말 통쾌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서로 말은 없었다.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하오 5시 45분, 내가 휴전 남방 「유엔」 측 휴게소 장교 「클럽」에 가보니 이수근 씨가 미국 헌병들과 함께 「카운터」에 창백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나는 이미 얼굴이 익어있어 『수고했습니다』고 말하며 악수했다. 이 씨는 말없이 손만 내밀었다. 그의 오른 손등에는 약간의 찰과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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