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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안보협의 급한데 … 주미대사에 통상전문 외교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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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근혜 정부의 초대 4강 대사 진용이 드러났다. 북한의 핵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4강 대사를 통해 주변국에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 주목되는 상황이었으나 뚜껑을 열어 보니 다소 의외의 인선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안호영 주미 대사 카드가 그렇다. 이홍구 전 총리를 비롯해 역대 주미 대사에 중량급 인사를 보내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해 오던 전례에 맞지 않게 차관급 인사를 내정했기 때문이다. 안 내정자의 개인적 역량은 일부 야당 의원들도 인정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민주통합당 의원은 “국회 상임위(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오랜 기간 쭉 봐왔는데 사안을 정리하고 규정하는 데 탁월하더라”라고 평했다. 외시 11회의 안 내정자는 2010년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주도적으로 치른 뒤 지난해 2월 외교부 제1차관으로 발탁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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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같은 당 홍익표 의원은 “이명박 정부 막판에 주미 대사로 최영진 전 주유엔 대사를 보낼 때도 ‘실무적 인선’이라는 평가가 있었는데 이번 주미 대사 인선을 보니 이를 넘어설 정도로 뜻밖의 결과였다”며 “박근혜계 실세로 알려진 권영세 주중 대사 내정자보다 급이 떨어지는 안 내정자의 인선이 미국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민주당 소속 외통위원은 “최근 미국 인사들을 만나 보니 박 대통령이 혹시 부친의 시해 과정에 대한 CIA 개입설을 의식하고 있는지 걱정하더라”며 “박 대통령이 부친의 영향으로 의외로 민족주의적 성향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느껴졌는데 이번 주미 대사 인선이 이런 물밑 기류에 영향을 주면서 한·미 간에 보이지 않는 불편함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 내정자는 유럽연합(EU) 대사를 비롯해 36년간의 외교관 경력 중 대부분을 통상과 다자외교 분야에서 일했다. 정무 분야에서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 통상 전문가가 주미 대사로 기용된 것이 맞느냐는 논란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국제정치학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초 한덕수(현 무역협회장) 전 총리를 주미 대사로 보낼 때는 FTA 재협상이란 현안이 있었다면 이번엔 정무 이슈가 핵심인데 통상 전문가를 발탁한 것은 잘 이해가 안 된다”라고 했다.

 실제로 새 정부의 대미 외교는 통상분야보다는 정무 쪽에 어려운 이슈가 많다. 당장 한·미 원자력협력협정 개정을 상반기에 매듭지어야 하고, 한·미 동맹 60주년을 맞아 주한미군 분담금 협상도 해야 한다.

 안 내정자와 미국의 인연도 그리 깊은 편은 아니다. 안 내정자는 1983년 조지타운대에서 국제정치 석사를 받고 1등서기관 시절이던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사이 2년여를 주미 대사관에 근무한 것이 전부라고 한다.

 4강 대사 중 유일하게 검사 출신인 권영세 주중 대사 내정자는 박 대통령의 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지난해 대선 당시 박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 종합상황실장을 지냈고, 한때 대통령 비서실장 후보로까지 유력하게 거론됐었다. 그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20여 일 전쯤 대사 내정 사실을 통보받았다”며 “남북관계가 이렇게 돼 있을 때는 중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정말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흥규(중국정치) 성신여대 교수는 “청와대와 외교부 핵심 라인에 중국 전문가가 없어 중국 측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던 와중에 박 대통령 측근이 대사에 내정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라고 중국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권 내정자는 국회의원 시절 한·일 의원연맹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일본과 인연은 있어도 중국과는 특별한 인연을 맺지 않아 적재적소 원칙에 맞느냐는 평가도 있다.

 이병기(외시 8회) 주일 대사 내정자도 국정원장 후보로 언급되던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를 맡아 치른 2004년 총선 때 선대위 전략기획단장을 맡아 인연을 맺었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에선 박근혜계 인사들 가운데 원조·원로급에 해당한다. 노무현 정부 출신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박 대통령에게 천거한 사람도 이 내정자였다고 한다. 이 내정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29일 밤 10시 넘어 허태열 비서실장이 전화를 해 다짜고짜 ‘축하합니다’라고 하길래 뭐냐고 했더니 (내정 사실을) 얘기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한·일 관계에 대해선 “외교 일선을 떠난 지 15년 이상 됐다”고 신중해 하면서도 “아무튼 한·일 관계는 기본적으로 미래로 가야 한다. 자꾸 과거로 가봤자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내정자 또한 일본 게이오대에서 3년간 객원교수를 지낸 것이 일본과의 인연의 전부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위안부·독도·교과서·신사참배 문제 등 문제가 속출할 것”이라며 “일본에 대한 전문적 역할에 대해 물음표가 있는 건 사실”이라고 평했다. 권·이 내정자는 대선 공신이었으나 새 정부 주요 인선에 포함되지 못한 대표적 케이스로 꼽혀 왔다. 새누리당에선 “박 대통령이 두 사람의 발탁을 통해 당에 불만이 있어도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란 말도 나온다.  

장세정·정원엽·하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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