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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농업 벤처화…우리 손으로 싹 틔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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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승용차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을 지나 대전∼무주간 고속 도로를 달리다 보면 금산톨게이트가 나온다. 여기로 빠져나와 또다시 용화방면으로 10여분 타고 가면 벤처농업인을 양성하는 ‘한국 벤처농업대학’이 시야에 들어온다.
오는 4월 첫 졸업을 앞두고 있는 이 대학의 농민 학생들은 요즘 논문 대신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느라 때아닌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학교측에서 ‘벼랑 끝에 몰린 한국 농업의 활로를 찾자’는 탁상공론식의 거창한 졸업논문은 쓸 필요 없이 ‘벤처 사업계획서’를 내놓으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비즈니스 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것이다.

사업계획서 발표를 통해 강사로부터 컨설팅도 받기도 한다. 사업을 하면서 발생하는 각종 애로사항에 대해서는 컨설턴트보다는 오히려 농민 스스로가 해결점을 찾는 경우도 많다. 전남 곡성에서 전통식품인 부각을 만드는 생자연의 오희숙씨는 자신의 사업을 설명하면서 “판로개척을 위해 무리한 투자를 한 게 부채로 남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히자 여러 사람들이 자신들의 실패사례를 들어가며 “무리한 사업확장보다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며 “서울 대리점을 축소하라”고 조언해준다.

이곳에 참석하는 농민들은 사업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지만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공동으로 판로 개척에 나서기도 하고 인터넷 사이트도 함께 개설, 공동 마케팅을 펼치기도 한다.

인삼초콜릿을 개발한 ㈜본정의 이종태 대표와 민속주를 만드는 가야곡왕주의 이준연 대표가 TV 드라마인 ‘상도’가 인기를 끌자 이를 활용한 ‘드라마 마케팅’을 시도한게 첫 게이스다. 이들은 ‘상인의 정신을 기르자’며 의기투합, 인삼과 민속주를 결합시킨 ‘상도 홍삼주’와 ‘상도 홍삼초콜릿’을 공동 개발했다. ‘드라마와 함께 제품도 뜰 것’이라는 그들의 기대는 그대로 적중했다. 특히 ‘상도 홍삼주’의 경우 주류도매상들의 주문이 폭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그러자 이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섭씨 5도 이하의 저온에서 보관하는 이온쌀을 생산해 연간 2백억원의 고소득을 올리는 풍년농산의 나준순 대표와 함께 3개 회사의 제품을 패키지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기로 합의하고 ‘세컨드(Second)’란 공동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모두들 자기네 것들이 최고라고 하는 것보다는 역발상적으로 두번째로 맛있는 ‘초콜릿·민속주·쌀’이라고 하면 소비자들의 관심을 더욱 끌 것이란 생각에 이같이 정했다고 한다.

포장디자인 개발이 완료되는 3월에 선보일 예정인 ‘세컨드’에 내포된 의미도 여러 가지다. 단어 자체가 풍기는 대로 섹시할 정도로 맛이 있다는 이미지를 주기도 하지만 내면에는 ‘정부는 물론 일반인에게 늘 두번째로 밀려 있는 농업을 첫번째로 지향하자’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충남 금산군 제원면의 한 폐교를 개보수하고 작년 4월에 들어선 벤처농업대학의 강의는 한 달에 한 번씩 열린다. 매월 4번째 토요일이 되면 전국에서 60∼80명의 농민들이 모여 오후 3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수업을 받는다. 수업이 끝나면 인근 여관에서 다음날 오전 2시까지 영농에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한국 농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마케팅 기법을 놓고 난상토론도 벌인다.

이 대학은 삼성경제연구소의 민승규 박사(농업경제학)의 관심과 노력으로 탄생했다. 지난 94년 농촌진흥청에서 일한 인연으로 농촌문제에 관심을 갖게된 민박사는 95년 경기도 화성의 한 농촌에서 중고 컴퓨터 30대를 가지고 농민 정보화 교육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농민들에게 인터넷 교육을 하면서 농업에도 마케팅과 경영기법이 도입돼야 한다는 요지의 강연을 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강연을 듣기 위해 농민들이 전국에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작년 6월에 농민 2백50며명을 회원으로 하는 벤처농업포럼(www.vaf21.com)을 구성했는데 지금은 등록회원만 해도 9백여명이 넘는다.

민박사가 운영을 맡고 있는 이 대학의 강사진은 대학교수, 마케팅 및 법률 전문가, 벤처기업인 등으로 구성돼 경영·마케팅 전략·사업계획서 작성법 등. 언뜻 생각하기에 농사와 상관이 별로 없어 보이는 과목들을 가르쳐주고 있다.

노부호 서강대학 교수, 신동헌 전 KBS 농업전문 PD를 비롯 서강호 삼성쇼핑몰 상무, 마케팅 컨설팅 업체인 Q&A마케팅 센터의 나종호 대표, 이언오 삼성경제연구소 상무, 아이디어를 사업화시켜주는 아이디어파크의 양웅섭 사장,삼성경제연구소 신현암 박사, 벤처기업 티켓링크의 한창민 이사 등이 강사로 참여했다.

초청 강사들은 무보수 자원봉사 형식으로 강의한다. 1년 과정으로 운영되는 이 대학의 농민 각자(매달 7만원)가 부담한다. 졸업하려면 사업계획서 심사에서 통과해야 한다. 불합격 판정을 받으면 유급조치된다. 따라서 이 대학을 졸업하는 것은 창의적인 마케팅 능력을 갖춘 것을 인정받는 셈이다.

첫 졸업생은 20명 정도에 머물 것이란 게 학교측의 예상이다. 강의를 더 듣고 싶어서 학생 스스로가 ‘유급조치를 시켜달라’며 부탁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학습태도와 농업벤처에 열정이 그만큼 뜨겁다는 얘기다. 이런 분위기는 초청강사의 명강과 잘 어울려 실제로 농업의 비즈니스화에서도 좋은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버섯돌이 3형제’란 캐릭터로 제법 알려진 상황버섯 재배 농민인 최용인·용주·용욱씨 3형제의 경우 이 대학 동창생. 그들은 “벤처농업대학에서 배운 마케팅 및 홍보를 활용한 덕분에 매출액이 대학에 다니기 이전보다 4배나 늘었다”고 들려준다.

이 대학에 정식 회원자격으로 입학하려면 내년 4월 2기 학생 모집 때 등록하면 된다. 비회원은 수시로 한국벤처농업포럼(02-3785-1808)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출처: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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