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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독재」에 염증 느낀 「인도네시아」|「수카르노」에서 「수하르토」시대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13년간의 옥고를 겪으면서 3백50년간의 「네덜란드」 식민지 통치로부터 「인도네시아」를 해방시킨 건국의 아버지 「수카르노」는 22일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수하르토」 에게 이양하기로 동의함으로써 1945년 독립이래 21년에 걸친 「수카르노」 체제는 끝장을 보았다.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 받아온 그의 영광에 치명적 타격을 준 것은 65년의 9. 30「쿠데타」― 이로 인해 그의 정치 운명뿐만 아니라 그의 「나사콤」 체제로 상징되는 아아 신흥세력의 기수로서의 「인도네시아」의 진로도 크게 우 선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의 지배체제에서의 한 기둥인 공산당의 괴멸 뒤에 대두 한 「수하르토」를 정상으로 한 반공육군은「수카르노」가 9. 30사건에 관련이 있다고 주장, 그 후 1년 5개월 간 그의 퇴진을 끈덕지게 종용해왔다.
퇴진 요구에 몰린 「수카르노」는 66년 3월 11일 「3·11 명령」으로 경찰치안의 전권을 「수하르토」에게 넘기고 그해 7월에는 제4회 잠정 국민 협의회의 결정에 따라 그의 대통령 종신제가 철폐되고, 그후는 68년의 총선거 결과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실의 속에서도 전면 패배를 자인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경제·도덕 혼란의 책임도 회피했을 뿐 만 아니라 지난 1월 10일엔 「나수티온」 국민협의회 의장을 비난하고 「수반드리오」(외상), 「아니」(공상), 「다람」(은행상) 등 체제지도자들의 일련의 재판을 통한 그에 대한 간접적인 퇴진 요구에도 굴하지 않고 오랜 친구인 「말리크」 외상의 인퇴 권고와 각 군단사령관의 충고도 외면해왔다.
이에 이르자 「수하르토」 장군 등도 스스로의 「인내의 한계」를 경고하고 2월 9일 국민협의회에 의한 대통령 비난 결의로부터 오는 3월 초순의 국민협의회 특별회의에서의 대통령 파면 결의의 준비로까지 나아갈 기세를 보이자 「수카르노」는 마침내 저항할 의지를 버리고 「허수아비」 격인 명목상의 대통령으로의 전락에 동의하고 만 것이다.
그의 실각의 원인은 20여년에 걸친 그의 독재 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누적된 불만의 폭발에 있다.
독립이 일천하기 때문에 국민이 나라의 방향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잠정적으로 국가가 국민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카르노」는 교도 민주주의를 표방,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경제에도 용훼하여 경제 법칙에 어긋나는 조처가 예사로 행해지기도 했다.
헌법이나 법률도 만들었으나 그는 권력을 자기 한 몸에 집중시키기 위해 이를 무시하고 대통령령을 남발했다.
독립국으로서의 전시 효과만 노리고 국민의 생활고는 무시한 그는 독립기념탑,「호텔」백화점 등만 늘리고 「말레이지아」 대결에서는 함부로 병력 수만 늘려 「인플레」를 조장시켰다.
이밖에 그를 본뜬 국민의 뇌물 만능 풍조, 여자관계 「스캔들」 등 그를 비난하는 죄목은 많다. 「수카르노」는 분명 「인도네시아」를 독립시켰지만 「인도네시아」를 오늘의 위기로 몰아넣은 것도 그의 책임인 것이다.
이미 그의 머리에서 박탈된 영광스런 칭호와 함께 그는 68년 총선거에서는 좌 선회에서 급「브레이크」를 건 「수하르토」 신체제에 의해 합법적으로 「인도네시아」의 새 역사에서 퇴장 당할 운명에 있다. <이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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