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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다 ~ 꽃들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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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남 구례 산동면 반곡마을에 가면 ‘남새밭 돌담 굽은 골목마다’ 노란 산수유가 활짝 피어 있다. 마을 전체가 노랗게 물들 정도다.

지난해 이맘때였습니다. 벚꽃을 보려고 경남 하동 쌍계사를 간 적이 있습니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접어드는 십 리 길은 벚꽃으로 아주 유명한 곳이지요. 네 시간 가까이 운전을 해서 갔지만 벚꽃은 꽃망울조차 맺지 않았습니다. 보통 4월 초에는 개화하지만 전혀 필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찬바람까지 불어 봄이 아니라 겨울 같았습니다. 그때의 황망함이란….

대신 섬진강 건너편, 전남 광양 매화마을은 하얗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원래 3월 중순께 개화했어야 하는 매화가 10여 일 늦게 핀 것이지요. 인근 전남 구례의 산수유도 그때야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더군요. 지난해는 3월 중·하순에 꽃샘 추위가 몰려와 봄꽃이 제때 화신(花信)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경남 창원의 진해 군항제도 벚꽃이 늦게 피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이 허탕을 쳤다지요.

올해도 벌써 3월이 다 가고 있지만 아직 봄은 완연한 것 같지 않습니다. 낮에는 제법 훈훈한 봄바람이 불어오지만 해만 떨어지면 여전히 쌀쌀합니다. 우리가 느끼기에 본격적인 봄의 시작은 언제일까요. 아마도 봄꽃 하나쯤 만개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매화도 좋고, 산수유도 좋고, 벚꽃도 좋고, 봄의 전령사들이 활짝 웃는 얼굴을 드러낼 때 ‘아! 드디어 봄이 왔구나’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는 4월 초순 새색시마냥 발그스레한 얼굴의 살구꽃이 필 때 봄을 실감합니다. 살구꽃과의 인연이 있어서죠. 혹시 고(故) 이호우(1912~70) 시인의 ‘살구꽃 핀 마을’이란 시조를 아시나요? 한 번 읊어보지요.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지고/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시인이 노래한 살구꽃 핀 마을이 바로 경북 청도 내호리 우리 동네였습니다. 시인의 생가도 바로 옆집이었고요. 실제로 마을 앞 강둑을 따라 살구나무가 정말 많았습니다. 지금도 살구꽃을 보면 어릴 적 봄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납니다.

올해도 봄꽃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지난해보다 일주일 정도 일찍 봄꽃이 핀다고 하더니만 정말이었습니다. 광양 매화도, 구례 산수유도 저마다 한껏 만개해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더 화려한 날이 이어지겠지요. 창원 진해에서는 벚꽃이, 목포 유달산에는 개나리가, 여수 영취산에는 진달래가, 지리산 바래봉에서는 철쭉이 차례로 피어나겠지요. 5월까지 전국 방방곡곡이 형형색색의 봄꽃으로 물들고, 개화 시기에 맞춰 곳곳에서 축제가 열리겠지요.

해마다 전하는 소식이지만 그냥 지나치면 왠지 섭섭한 것이 꽃 소식입니다. 그래서 올해도 week&은 5월까지 열리는 전국의 봄꽃 축제를 정리했습니다. 곁들여 먹거리 축제도 준비했습니다. 봄은 꽃에서도 오지만 먹거리에서도 오기 때문이지요. 눈과 입이 즐거운 봄 축제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글=이석희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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