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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시민 세금 31억 쓰고도 시민 푸대접한 서울시 패션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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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지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27일 오후 편집국으로 전화가 왔다. 패션디자이너가 꿈이라는 고1 여학생이었다. 이날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열린 ‘서울패션위크’의 패션쇼를 보기 위해 오전 수업만 마치고 조퇴했다고 했다. 오후 4시에 열린 정혁서·배승연 디자이너의 쇼를 보기 위해서였다. 어렵사리 구한 VIP초대권을 갖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판매한 입장권(1장 7000원)은 금세 매진돼 살 수가 없었단다.

 이 학생은 이날 패션쇼를 보지 못했다. 쇼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서 기다렸지만,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자리가 없으니 돌아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초대권이 소용없는 줄 알았으면 수업까지 빼먹고 오진 않았을 거예요.” 그 학생 얘기다. 초대권을 가진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유료 입장권을 산 사람도 160명 넘게 들어가지 못했다.

 패션쇼장에 들어간 이들은 따로 있었다. 이효리·윤승아·안혜경·이천희·전혜진·씨스타(보라, 다솜)·미쓰에이(지아, 민, 페이) 등 유명 연예인들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수행하는 공무원들도 쇼를 즐겼다. 이날 오후 5시가 되기 전부터 인터넷엔 맨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패션쇼를 관람하는 박 시장과 가수 이효리의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멀쩡히 표를 사고도 입장조차 못한 사람들이 환불 절차를 알아보며 분통 터뜨리고 있던 시간이었다.

 행사 진행을 주관한 이노션월드와이드 관계자는 “유료 입장권을 패션쇼별로 250장씩 판매하고, VIP초대권·일반초대권 등 무료 입장권을 800장씩 배포했다”고 설명했다. 초대권 수만도 입장 가능 정원 700명을 넘겼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또 있었다. 참가 디자이너들도 별도로 초대권을 보내고, 이른바 ‘셀레브리티’들이 오면 줄도 세우지 않고 그냥 입장시킨다는 점이다. 이 관계자는 “27일 정혁서·배승연 디자이너의 패션쇼에 입장한 700명 중 정상적으로 줄을 서서 들어간 ‘일반인’은 80명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나머지 620명이 모두 ‘특별대접’을 받은 ‘VVIP’였던 거다.

 ‘서울패션위크’ 주최자는 서울시다. 연간 시민 세금 31억원이 투입된다. 그래서 구입한 표를 하릴없이 물리고, 시간을 바닥에 버려야 하는 평범한 시민의 속은 더 쓰리다. 더한 건 주무 부서인 서울시 문화산업과 백운석 과장의 말이다. “디자이너의 비즈니스 행사다. 바이어와 언론, 유명인들이 우선 입장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민들에게 표 팔고 초대권 나눠준 뒤 서울시 공무원이 할 말은 아니다. 대민봉사의식도, 그가 얘기하는 비즈니스 상도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지 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