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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실 나빠 내가 없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속보=송천동 권총 살인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 성북서는 진범으로 피살된 장충수(24)군의 맏형 장영수(39)와 친구 이석암(39)을 15일 각각 수원에서 검거했다.
장은 범죄 소굴에 빠져 가족들을 무척 괴롭혀 온 동생을 타이르다 못해 권총을 가진 친구 이석암과 함께 11일 하오 7시 송천동 산위에서 2발을 쏘아 동생의 목숨을 끊었다고 자백했다.
죽은 장군의 형이 수원(장안동 79)에 산다는 것을 알아낸 경찰은 형인 장이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긴 커녕 『그애가 완전히 죽었더냐?』고 되풀이해 묻고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가 가족들 진술과 엇갈리는데 의심을 품고 서울에 연행했었다.
13일 밤 서울 「동선여관」에서 철야 심문이 계속되자 장은 자꾸 냉수만 청하던 끝에 상오 2시 『친구 이씨와 짜고 동생을 죽였다』고 자백했다.

<우물에 던진 권총>
14일 밤 수원에 급파된 형사대는 교동 199 이석암을 검거, 권총의 출처를 추궁해 갔다. 완강하게 「공동정범」 관계를 부인하던 이도 15일 아침 형사대가 정을 대동하고 내려가 그와 대질시키자 『권총은 직장인 「삼남 주철 공장」안 우물속에 던졌다』고 자백했다.
경찰은 17척이나 되는 깊은 우물을 소방차까지 동원 물을 퍼내어 권총을 건저 냈다. 우물바닥에는 45구경 권총과 탄알 78 그리고 이씨의 권총 휴대증이 든 검은 가죽 가방이 놓여 있었다.

<범행 경위>
지난 10일 밤 동생 장군 때문에 한바탕 소동을 치른 장씨 집을 방문한 이는 동생을 죽이자고 제의했다.
11일 아침 두 사람은 장군을 데리고 서울로 와서 장군이 흥인동 하숙집에 밥값으로 잡혔던 운전 면허증을 찾아준 뒤 「아버지의 성묘」를 구실로 하오 7시쯤 현장에 도착했다. 장은 산 위에서 동생과 마주앉아 술을 권하며 마지막으로 『개심하고 새 사람이 되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장군은 『취직도 싫으니 용돈 7천5백원씩을 내라』고 말을 듣지 않았다.
장군 뒤에 서있던 이씨가 강 군의 뒤통수, 그리고 뺨에 한발씩을 쐈다.

<장군의 소행>
5살 때 부모를 여윈 장군은 6남매 중 세째. 맏형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다 중퇴(중앙고등공민 2년) 했다.
장군은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도벽이 있는 비행소년으로 인천 소년보호소 신세까지 졌으며 전과 6범의 범죄자로 자라났다.
지난 5일에도 모 병원의 간호원인 누나 장모(24)양을 찾아가 돈을 안 준다고 때렸다. 10일에는 맏형에 달려들어 『면허증을 찾아주고 양복 한 벌을 해달라』고 행패를 부리며 형수 이(31)씨를 마구 때리는 수라장을 벌였다.

<생활의 주변>
죽은 장군은 서울 문리대 사학과 3년을 중퇴한 맏형 장영수(39)와 모 제약회사 사원으로 일하는 둘째형(38) ,모 병원 간호원으로 있는 누나(24) 등 형제들이 무엇이든 자기 보다 나았고 전과자인 자기를 멀리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뒤틀린 장군은 부모의 유산을 전부 물려받은 맏형을 미워하며 용돈을 주지 않는다고 작년 4월께는 직장까지 찾아가 장씨를 때려 누이고 과도로 장씨의 오른쪽 가슴과 왼팔 등 여섯 군데나 찌른 일도 있었다.
범인 장은 이런 동생 때문에 월급 1만7천원 중 1만원을 동생의 용돈에 충당해야 됐다.
이렇게 쫓기다 못한 장은 지난 1월 10일 부인과 어린 4남매를 데리고 서울 동대문 하숙집에 20일이나 숨은 적도 있었다.
경찰에 잡혀온 장은 『나하나 희생되어 가족이 공포에서 벗어나게 된 게 다행입니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친구 이도 『세상에는 이런 비극이 많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친구의 의리와 정의가 더 소중하기 때문에 살인을 했다. 절도나 강도보다는 더 낫지 않은가』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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