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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후보 스승 vs 우승후보 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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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8년 만에 현장에 복귀한 김응용 한화 감독이 지난 10일 KIA와의 광주 시범 경기에서 선수들을 지켜보며 웃고 있다. [임현동 기자, 사진 왼쪽], 선동열 KIA 감독이 광주구장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는 스승 김응용 감독과 의 대결을 앞두고 “승부는 승부”라며 양보 없는 경쟁을 예고했다. [중앙포토, 오른쪽]

경기가 한창일 때 선동열은 운동장 구석에서 짬뽕을 배달시켜 먹었다. 전날까지 이틀 연속 등판한 데다 팀이 크게 이기고 있어 등판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국물을 들이켜는 순간 김응용이 소리쳤다. “동열이 던지라고 해.” 선동열은 깜짝 놀랐지만 군말 없이 등판했다. “배가 불러서 공 던질 때 허리가 굽혀지지 않더라고. 허허.” 프로야구 초창기 최강 팀이었던 해태(현 KIA) 타이거즈 시절 일화다.

 1983년부터 해태 감독을 지낸 김응용에게 85년 입단한 선동열은 천하의 보물이었다. 선동열은 95년 일본에 진출할 때까지 11년 동안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146승·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을 기록하며 ‘국보 투수’로 이름 날렸다. 김응용이 명장으로 군림한 데는 선동열의 공이 꽤 컸다.

 그래도 특별 대우는 없었다. 선동열은 “선발로 나가 5회 투아웃까지 잡았는데 날 교체한 적도 몇 번 있다. 아웃카운트 하나만 잡으면 승리투수가 될 수 있지만 가차없이 바꾸더라”며 “팀을 위해 개인은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감독님께 승부의 냉혹함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선동열이 기억하는 김응용과의 인간적인 추억은 “수고했어”라며 두세 번 악수한 것이 전부다.

 ◆28년 스승과 제자, 감독 맞대결

선동열이 일본 프로야구 생활을 마치고 지도자를 하겠다고 선언한 2003년 말 프로야구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LG·SK·두산 구단은 선동열을 감독으로 영입하기 위해 경쟁했다. 그러자 삼성 사령탑이었던 김응용이 선동열을 불러 수석코치를 맡겼다. 1년 후 선동열은 삼성 감독이 됐고, 김응용은 선수 출신 최초로 구단 사장이 됐다. 삼성이 2005, 2006년 거푸 우승하면서 둘은 가장 운 좋고 성공한 사제지간으로 불렸다. 김응용이 삼성 사장에서 물러난 2010년 말 선동열도 삼성을 떠났다.

 선동열은 호랑이 김응용 밑에서 ‘호랑이 새끼’로 컸다. 지도자로도 성공한 그는 삼성에 이어 지난해 KIA 지휘봉을 잡았다. 본지가 프로야구 해설위원 1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선동열이 이끄는 KIA는 2011, 2012년 챔피언 삼성과 함께 올 시즌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다.

 김응용은 8년 만에 감독으로 돌아왔다. 만 72세 현역 최고령 감독인 그는 지난 4년간 세 차례나 꼴찌를 한 한화 이글스를 맡았다. 선동열을 비롯한 한참 후배인 감독들과 경쟁해야 한다. 한화의 전력은 신생 구단 NC와 함께 최약체로 분류된다. 선동열은 “김 감독님과는 정말 대단한 인연이지만 싸울 때는 냉정하게 붙을 것”이라고 했다. 김응용은 “사제지간을 따지는 건 아마추어다. 한화가 KIA보다 약하지만 야구에선 약팀이 강팀을 이길 수도 있다”며 맞받았다. 30년 가까운 둘의 인연은 돌고 돌아 2013년 다시 이어졌다. 우승에 도전하는 제자, 제자에게 도전하는 스승의 구도는 2013 프로야구의 가장 흥미로운 포인트 중 하나다.

 ◆KIA·삼성·두산 3강, 한화·NC 2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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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전문가들은 2013년 판세를 3강-4중-2약으로 봤다. 이승엽과 오승환이 주축을 이루는 삼성은 시범경기에서 최하위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우승후보다. 부상 선수가 많아 지난해 5위에 그쳤던 KIA는 올 시즌 전력을 정비했다. 부상 선수들이 돌아와 시범경기 1위를 차지하며 삼성의 대항마로 떠올랐다. 해설위원 14명 모두가 두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4위까지)을 예상했다. 롯데로부터 홍성흔을 데려온 두산도 13표를 얻었다.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SK와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오른 롯데도 4강 후보로 꼽혔다. 올해 1군에 올라온 제9구단 NC는 유력한 최하위 후보지만 류현진이 빠져나간 한화 전력도 크게 낫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프로야구는 오는 30일 삼성-두산(대구), KIA-넥센(광주), SK-LG(인천), 롯데-한화(부산)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9개 구단이 팀당 128경기, 총 576경기를 치른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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