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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김정일 뇌졸중 쓰러지자 1년내…" 오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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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지난 1월 초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MB) 정부 대북정책의 성과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5년간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추진해 한반도 평화유지와 남북관계의 틀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일방적인 대북 지원을 통해 ‘북한의 자비에 의존하는 평화구조’에서 탈피했고, 대북 식량지원을 중단함으로써 북한 내 장마당 활성화라는 ‘변화’를 이끌어 냈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의견도 비슷하다. “남북관계를 정상적인 국가관계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진정한 남북관계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 일정 부분 동의를 받고 있다. 북한이 수조원에 이르는 남한의 막대한 지원을 받으면서도 이를 ‘조공’으로 여기는 교만한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핵과 미사일 실험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분단국의 대통령으로서 남북관계에 대한 구체적 목표와 비전이 없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지도자가 비전이나 철학이 없으면 눈앞에 놓인 현안에 휩쓸린다”고 강조했다. 고 교수의 지적처럼 이명박 정부 내내 대북정책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강경→유연→강경을 오갔다.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다가도 ‘통일이 가까워졌다’며 통일세를 언급했다.

 또 다른 비판은 ‘남북관계를 남한은 갑(甲), 북한은 을(乙)’이라는 관점에서만 봤다는 점이다. 북한이 아쉬운 소리를 하기 전에는 지원할 수 없다는 논리가 생기게 된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의 분석. “북한은 김기남 비서가 서울에서 홀대를 당하면서도 정상회담 개최를 남측에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MB정부는 ‘북한에 세게 나가니까 북한이 기어들어오는구나’라고 판단을 했죠. 북측은 정상회담 접촉에서 국군포로 송환 허용 등 나름대로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했는데, 남측이 요구조건을 계속 높이자 기분이 상해 그렇다면 ‘핵과 미사일을 많이 만들어 앞으로는 우리가 갑이 되자’고 결심한 것입니다. 남북관계가 대결 국면으로 들어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죠.”

 남북관계를 갑을 관계로 보는 이명박 정부의 인식은 2008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더욱 굳어졌다. 청와대 외교안보 핵심 당국자는 2009년 9월께 “향후 1년 정도만 식량지원을 하지 않으면 북한이 무릎 꿇고 들어올 것”이라고 MB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김계동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교수의 분석이다.

 “국가 관계가 갑을 관계로 되려면 ‘을’의 국가가 ‘갑’의 국가에 안보나 경제를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정치학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한국에 안보나 경제를 의존하는 구조는 아니지 않습니까. ‘북한체제 붕괴’와 ‘북한 관리’는 차원이 다른 개념인데 이 점을 MB정부가 간과한 겁니다. 전자(前者)는 우리가 조용하고 치밀하게 대책을 강구하면 되는 것이고, 후자(後者)는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정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분야가 아니겠습니까.”

안희창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정영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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