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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주머니엔 꾸준히 현금이 들어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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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교회 예배를 보고 나오는 신자들. 강남 시니어 가운데는 은퇴 후 교회·성당 등 종교활동을 일상의 중심에 놓고 생활하는 사람이 많다. [김경록 기자]

재산은 있어도 현금은 없다. 한국 시니어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열에 일곱(71.6%)은 부동산을 갖고 있지만 임대소득을 올리고 있는 경우는 4%에 불과하다(2009년 기준). 이들이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하던 때는 여유가 좀 있어도 내집 마련 차원이나 시세차익을 고려해 아파트를 살지언정 임대수익을 목적으로 수익성 부동산을 사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소득이 전혀 없는 65세 이상 시니어가 201만 명이나 된다. 전체 65세 이상 인구 588만 명(2012년 기준) 가운데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다. 가진 거라곤 살고 있는 집 한 채뿐인 하우스푸어 시니어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 자원봉사 중인 이상규씨.

한국 시니어의 우울한 현주소다.

그러나 대다수 강남 시니어는 다르다. 江南通新이 이번 취재 과정에서 만난 강남 시니어 38명 전원이 많든 적든 현금 흐름이 있었다. 이영우 대우증권 PB클래스 갤러리아부장은 “강남 시니어는 자택 외에 수익용으로 오피스텔 한 채 정도나 굴릴 수 있는 금융자산 10억원가량은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은퇴 후에도 현금 흐름이 있는지 여부가 강남 시니어와 강북 시니어를 가르는 가장 큰 요소인 셈이다. 다시 말해 은퇴 후에도 생활비 많이 드는 강남에 계속 살려면 임대수익이든 연금이든 꾸준하게 내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와야 한다는 얘기다. 이게 충족이 안 된 시니어는 은퇴 후 강남을 떠나 서울 외곽 등으로 많이들 옮겼다.

 노무현 정부 시절 도입한 종합부동산세(종부세)가 계기가 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강남을 떠난 시니어도 적지 않다. 이모(73·분당)씨도 그중 하나다. 그는 “당시 버는 돈이 없는데 1000만원 넘는 세금을 갑자기 내라니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강남 아파트를 팔았다”며 “세금 때문에 삶의 터전을 바꿔야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경제적 난관을 다 극복하고 강남에 남은 강남 시니어는 대략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남들은 다 한참 전 은퇴할 나이지만 여전히 현직에 있거나 현직만큼 왕성한 활동을 해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다. 자신이 사업체를 직접 경영하거나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출신이 주로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고위 공무원이나 대기업 간부, 교수 출신이다. 이들은 공무원 연금 등 다양한 연금 소득이 있거나 현직 시절 모은 금융자산을 굴려 현금흐름을 만들어 낸다. 셋째가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재테크에 성공한 자산가다. 이 세 부류가 딱 구분된다기보다 서로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다.

 굳이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빈곤층이다. 김모(72·청담동)씨는 “난 매달 월세가 1000만원씩 나온다”며 “그러나 내 주위엔 강남에 살지만 경제적 형편이 안 좋아 복지관조차 못 나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강남 시니어 내에서도 빈부격차가 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강남 시니어의 주류는 아니다.

 세 번째 유형, 즉 재테크의 귀재인 강남 시니어 중엔 특히 부동산으로 재미를 본 사람이 많다.

 전업주부 김모(77·압구정동)씨는 “바쁜 남편을 대신해 내가 재테크 정보를 얻어 재산을 불렸다”며 “요즘 대치동 엄마가 교육 정보에 빠르다는데 예전 강남 엄마는 부동산 정보에 빨랐다”고 말했다. 이른바 1980년대 복부인 전성시대의 주인공들이다.

 딱히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은 사람 역시 강남 지역 아파트 값이 크게 오르면서 이곳에 집 한 채만 있어도 장부상으론 큰돈을 벌었다. 이게 노무현 정부 시절엔 종부세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부동산이라곤 살고 있는 집 한 채뿐인 사람의 충격이 컸다. 집 팔아 양도차익을 본 것도 아닌데 갑자기 집값 올랐다며 세금 폭탄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남 시니어에겐 대부분 당시의 종부세 폭탄 트라우마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당시 기억이 워낙 강렬해서인지 강남 시니어에겐 늘 세금이 주요 관심사다. 최근엔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올해부터 금융소득종합과세(종과세) 부과 기준이 연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강화됐기 때문이다. 웬만큼 금융소득이 있는 시니어는 안 내던 세금을 추가로 더 내야 할 판이다.

 안모(75·청담동)씨는 “요즘 내 또래를 만나면 온통 종과세 얘기뿐”이라며 “소득 없는 은퇴자를 배려하기보다 오히려 생활비로 쓸 돈을 세금으로 더 걷겠다니 분노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은행·증권사 등 금융회사 PB센터는 대안으로 “절세형 금융상품 위주로 금융상품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라”고 권한다. 그러나 강남 시니어들은 이처럼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과는 별도로 세금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커져가는 것도 이런 이유다.

글=안혜리·전민희·조한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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