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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 ‘따로 또 같이’ 정책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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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한라비스테온공조의 역사는 현대자동차 해외 수출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 업체는 현대차 엑셀이 미국에 상륙하기 직전인 1986년 설립됐다. 첫 제품도 엑셀에 들어가는 냉각장치였다. 맨땅에서 시작한 이 업체는 지난해 3조65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자동차용 공조기기 분야 세계 2위 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성장 과정에서 초기에는 현대·기아차가 핵심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현대·기아차뿐 아니라 포드·마쓰다·크라이슬러·폴크스바겐 등에도 두루 납품한다. 현대·기아차가 ‘전속계약’을 고집하지 않고 여력이 되면 경쟁 업체에도 납품할 수 있도록 ‘따로 또 같이’ 정책을 취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부품 업체들에 독점 공급을 요구하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개방적인 태도다.

 국내 완성차 업계의 급성장과 동반성장 정책에 힘입어 자동차 부품 업체들이 성장 효과를 톡톡히 본 것으로 조사됐다. 26일 한국무역협회의 품목별 수출입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산 자동차부품 수출액은 246억 달러로 3년 연속 사상 최고액을 경신했다. 1992년 수출액(5억 달러)과 비교하면 20년 만에 50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같은 기간 자동차부품 무역수지도 5억 달러 적자에서 197억 달러 흑자로 탈바꿈했다. 1990년대까지 세계 시장에서 눈에 띄지 않던 국내 부품 업체는 2000년대 현대·기아차와 해외 동반 진출을 통해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자생력을 갖추면서 글로벌 부품 업체로 크고 있다.

 지난해 한라비스테온공조의 매출액에서 현대차 계열이 차지하는 비중은 55% 정도다. 에스엘도 한국GM의 말리부·크루즈에 전조등을 납품하고 있다. 자동차 문 개폐장치를 만드는 평화정공 역시 한국GM·쌍용차에 두루 공급한다. 이 덕분에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300여 1차 협력업체 평균 매출액은 2237억원으로 2011년(2113억원)보다 10.6% 늘었다. 현대·기아차의 매출 증가율(8.9%)보다 높다. 김준규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산업조사팀장은 “부품업체들이 공급처를 늘려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토대로 연구개발(R&D) 역량을 키우는 선순환을 통해 품질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현대차 측의 판단이 적중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해외의 평가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미국으로 수출한 자동차 부품은 56억 달러어치에 달했고, 중국도 44억 달러어치를 사갔다.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일본(7억 달러)·독일(3억 달러) 같은 자동차 선진국의 주문도 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정책투자은행은 지난달 19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국 업체들의 부품 공급 확대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품질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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