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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작주초 성찬경 시집「화형둔주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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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성찬경씨가 처녀시집「화형둔주곡」을 냈다. 이 책의 마지막 시「한 줄의 시구」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가난한 가슴에 무한한 빛이 되는 한 줄의 시구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바치겠다. 50년부터 65년까지 쓴 60편의 시는 한결같이「한 줄의 시구」를 찾는 그의 각고를 말해준다.
『역사적 현실 전체가 시의 내용입니다. 시란 시화된 시대정신이라고 봅니다. 사회적「리얼리즘」만이 역사적 현실을 표현하는 것이 결코 아니지요.』그러므로 시대가 가지는 언어의 질감(텍스처)이 문제라고 한다. 『우리말의 약점은 서구적 의미의「언어의 탄력과 밀도」가 모자라는 점입니다. 이 탄력과 밀도를 살리는 것이 우리 시의 세계를 심화시키는「모티브」가 될 것입니다.』엄정하고 정확하고 미묘한 의미를 표현하고자 하는 그의 방법을 스스로「밀핵적 방법」이라 부르고 있다. 그의 시가 지니는「다이내믹」한 생명감과 놀라운 밀도는 여기서 생기는 것이다.
시가 상당히 난해한 것 같던데 어디에 원인이 있는지. 『나의 시의 중심「테마」가 물성과 영성의 관계라고 하겠는데「테마」의 형이상학적 성격에도 원인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영혼은 감각할 수 있는 사물 속에서만 투시될 수 있는 것이며「메타포」를 찾아 쓰노라면 까다로와 질 수 있겠지요. 그러나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작이외는 무엇을 하시는지?『무얼 하고 밥 먹느냐는 말이지요. 저녁에 학관에 나가 영어를 가르칩니다. 생활이 불안정할 것으로 생각하시는 듯한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입시전쟁이 점점 더 격화될 테니까요.』그는 소년처럼 웃는다.『시인의 생활을 국가에서 보장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시인이 과연 자유로운 정신으로 창작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배부른 가축처럼 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그는 세상을 원망하고 자신을 조롱하는「통념 속의 시인」과는 거리가 멀다. 현실의 어려움을 오히려 창조의「모티브」로 보고 있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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