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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독일 은행은 기업들의 ‘키다리 아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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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손해용
경제부문 기자

“독일 은행은 기업과 장기 신뢰관계를 구축하면서 투자와 사업을 함께 추진합니다. 은행이 제조업을 보좌하며 수출강국으로 가는 동반자 역할을 하지요.”(바바라 뵈트허 도이치은행 리서치총괄헤드)

 12일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한 비공식 세미나. 그의 말 한마디에 금감원 임직원의 눈과 귀가 쏠렸다. ‘독일 중소기업의 성공과 효과적인 금융 지원’이란 주제로 열린 이 세미나에서는 독일식 금융 지원시스템이 소개됐다. “은행의 기업 지원시스템이 영미식에서 독일식으로 바뀌는 첫 단추가 될 것”이라는 게 금융 당국이 이 세미나를 구상한 배경이다.

 독일 은행은 단기 성과주의를 배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우스 방크(Haus Bank)로 불리는 이 시스템은 일단 은행이 기업과 관계를 맺으면 자금 흐름에서부터 매출 동향, 심지어 경영인의 가족사항까지 점검하며 기업의 성장·변화에 대처한다. 길게는 수십 년간 각종 금융서비스 등을 통해 기업 발전을 돕고, 장기적으로 기업 성장에 따른 과실을 함께 나눈다. 반면 한국의 은행은 ‘비 올 때 우산 뺏기’로 악명이 높다.

 금융의 본래 역할은 실물경제 지원이다. 제조업은 호황기에 공장을 완전 가동하지만, 불경기에는 조업 단축과 비용 절감 등을 통해 고통을 견딘다. 그런데 은행이 제조업과 매번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만 하면 어떻게 될까. 경기 정점에서는 거품을 더 키우고, 거품이 꺼질 땐 많은 부실을 유발해 침체의 골을 더 깊게 하곤 한다. 이런 점에서 경기 흐름에 따라 ‘돈장사’에 몰두하는 영미식과 달리 장기 관점에서 기업을 지원하는 독일식은 유난히 기복을 타는 한국 경제가 참고할 점이 많아 보인다.

 한국에서 금융산업이 다른 산업과 대비되는 차이는 ‘특혜적인’ 면허를 받아 장사한다는 점과 수익 대부분을 국내에서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산업이 다른 산업을 위해 감내해야 할 ‘공익성’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최근 기업의 ‘키다리아저씨’를 자처하는 독일식 금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손해용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