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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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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인경이 25일(한국시간) LPGA 투어 KIA 클래식 4라운드 연장 첫 번째 홀에서 파 퍼트를 실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칼스배드(미국 캘리포니아주) AP=뉴시스]

‘깊은 밤 검은 새가 노래하고 있습니다/부러진 날개로 나는 법을 배우기 위해/온 힘을 다해/날아오를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인경(25·하나금융그룹)이 어쿠스틱 기타로 즐겨 연주하는 비틀스의 노래 ‘블랙 버드’다.

 슬픈 노래를 좋아하는 김인경이 연장전 4전 4패의 기록을 남기게 됐다. 25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칼스배드의 아비애라 골프장에서 열린 LPGA 투어 KIA 클래식에서다. 우승은 9언더파 동률로 들어간 연장 두 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은 베아트리스 레카리(26·스페인)가 차지했다.

 김인경의 가장 유명한 연장 패배는 지난해 메이저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이다. 마지막 홀에서 30㎝ 정도의 짧은 퍼트가 홀을 돌아 나오는 장면을 보고, 손을 입에 댄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그의 모습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골프팬의 뇌리에 깊이 남아 있다.

 김인경은 독특한 선수다. 하루 종일 연습장에서 보내는 다른 프로 골퍼와는 다른 삶을 살려 한다. 어려선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았고, 혼자 해야 위대한 선수가 된다며 홀로 미국 유학을 갔다. “철학이나 문학을 배우고 싶고, 작가가 되고 싶다”며 “정말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골프에서도 지려 하지 않는다. 김인경의 목표는 안니카 소렌스탐 같은 강력한 세계 랭킹 1위다. LPGA 투어 이지영 선수의 아버지 이사원(59)씨는 “중학교 때 연습장에서 인경이는 체격도 작은데도 우리 지영이보다 거리가 적게 나가자 온 힘을 다해, 뒤에서 달려와서 공을 치기도 하던 지기 싫어하는 아이였다”고 말했다.

 2007년 열아홉 살 LPGA 신인이던 김인경은 2홀을 남기고 3타를 앞서다 오초아에게 역전패를 당한 일이 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김인경은 “지금 울 수 있지만 나는 울지 않겠다. 랭킹 1위 선수와 잘 싸웠고 경험을 얻었다. 이 경험으로 인해 더 밝은 미래를 봤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김인경은 날아오를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온 힘을 다해.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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