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 세금 물릴 예금 러시아 검은돈이 주표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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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그룹 회의에 참석한 유로존 재무장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피에르 모스코비치 프랑스 재무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 마리아 페크터 오스트리아 재무장관. [브뤼셀 로이터=뉴시스]

키프로스가 국가 부도사태는 피하게 됐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은 25일(한국시간) 키프로스를 구제하기 위한 최종 계획을 승인했다. 키프로스의 의회 비준을 받지 않아도 되는 안이다. 이제 구제금융 100억 유로(약 14조4800억원)가 지급되는 일만 남았다.

 유로그룹은 벼랑 끝에서 단안을 내렸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구제금융방안이 결정되지 않으면 26일부터 키프로스 시중은행에 자금을 대주지 않겠다”고 선언해 놓은 상태였다. 승인이 하루만 늦었어도 키프로스는 시중은행 파산과 국가 부도사태를 맞을 뻔했다.

 키프로스 예금 징발(예금자 손실분담) 조건은 완화됐다. 10만 유로 미만 예금자는 당초 예금 6.75%를 떼일 운명이었으나 이를 피하게 됐다. 반면 키프로스 2위 은행인 라이키 등 부실 은행들에 10만 유로 이상을 맡긴 예금자는 최악의 경우 예금을 40%까지 떼이게 됐다. 기존 구제안에선 9.9%의 손실을 분담하면 됐다. 로이터통신은 금융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키프로스에 뭉칫돈을 많이 예치해 놓은 러시아 기업과 부호들이 애초 구제안보다 훨씬 큰 피해를 보게 됐다”며 “독일이 러시아에 겨눈 단검(dagger)을 끝내 거두지 않았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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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프로스에 예치된 러시아 돈은 무려 260억 유로(약 37조6500억원)에 이른다. 키프로스 국내총생산(GDP)의 1.5배나 되는 거금이다. 대부분이 키프로스를 통해 탈세와 돈세탁을 노린 검은돈이다. 이런 사실은 지난해 11월 독일 연방정보부(BND)의 비밀보고서가 언론에 유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BND는 보고서에서 “독일이 키프로스를 구제하면 사실상 러시아의 검은돈을 대신 지급해 주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키프로스 구제에 대한 독일인들의 반대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로선 9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그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가 글로벌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에도 예금 징발을 밀어붙인 이유다. 메르켈은 추가 협상 과정에서도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여기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가세했다. 그는 평소 가혹한 구제금융 조건을 비판했으나 이번만은 메르켈 편을 들었다. 자국 부호들의 세금 망명을 받아들인 러시아에 대해 앙갚음하기 위해서였다는 분석이다. 러시아 정부는 올 1월 프랑스 국민배우 제라드 드파르디외가 부자 증세를 피해 망명을 요청하자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메르켈은 키프로스에 금융법규 개정도 요구해 관철시켰다. 금융정보원 같은 기구를 만들어 키프로스 은행들이 검은돈 통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도록 했다. 러시아 자금을 겨냥한 초강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인들이 대체 통로를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는 1990년 이후 경제성장을 이끌어 온 키프로스 금융산업의 좌초를 뜻한다. 키프로스 경제의 침체 골이 더 깊어질 전망이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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